▲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하루 한 페이지, 오늘의 노동일력
(instagram.com/laborcalendar)을 공유하는 일로 매일 아침, 잠의 세계에서 깨어난다. 일력에는 지역과 전국의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을 담은 문장과 함께 기억하고 싶은, 기억해야 할 삶과 죽음의 기록들이 담겨 있다.

한 해의 첫 절기 입춘부터 5월의 첫날까지 지난 87일. 노동·사회 운동의 역사적 투쟁들, 어떤 승리, 어떤 패배, 저마다의 상흔들과 날마다의 죽음들을 되짚는다. 어느 날에는 “작업물은 2분에 한 번씩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2분 동안 대단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음)”라는 엉뚱하고도 다정한 당부에 웃음 짓는다. 어느 날은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이렇게밖에 못해서…. 살자고 노력했습니다”라는 열사의 유언에 내내 침잠한다.

노동절 아침, 그날의 일력에도 한 열사의 이름과 하루의 문장이 함께 적혀 있었다. 변형진 열사는 택시노동자로 삼환택시의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다, 1986년 4월 30일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날인 5월 1일 “미안하다. 하지만 이 길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떳떳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 텐데”라는 말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변형진 열사 1986’ 열사의 이름과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의 숫자 너머, 그의 삶과 투쟁을 되짚던 노동절 아침,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였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인 동지는 분신 전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 힘들게 끈질기게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데 혼자 편한 선택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해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동지들 옆에 있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동지는 전신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앞으로 연일 동지의 쾌유를 바라고, 정권의 부당한 건설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자리를 지켰다. 동지의 이름이 또 한 명의 열사로 기억되지는 않기를, 부디 동지가 의식을 다시 찾고, 몸을 일으켜, 살아서, 오래도록 살아서 ‘동지들 옆에’ 함께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2일 오후, 동지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1986년의 변형진 열사가, 2023년의 동지가, 다만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말할 수 있을까. 37년 전에도, 오늘날에도, 국가권력과 자본은 다만 인간답게 일하고 살아가려 정당하게 투쟁하는 노동자의 자존감을 짓밟고 존엄을 훼손하는 잔혹하고 무례한 탄압으로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이 사회적 타살의 비극을 끊임없이 자행하는 국가권력과 자본에게 어떻게 분명한 책임을 묻고 다툴 수 있을까?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인 노동절, 전국 15개 지역에서 13만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에 나섰다. 건설노조와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에 맞선 강력한 투쟁을 이어가겠다 밝혔다.

‘길’은 찾기 어렵고, ‘분열’은 손쉽다. ‘야만’과 ‘폭력’에 맞서, 우리가 우리의 일과 삶을,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결국 ‘연대’와 ‘단결’이리라.

노동절, 일력에 담았던 문장을 다시 적어둔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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