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공인노무사(학교비정규직노조 정책실장)

5월8일 어버이날이다. 경상도 시골 부모님 댁에 왔다. 아버지만 계신다. 지난해 이맘때 어머니가 장날 읍내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가셨다.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하고 치료받았지만 지금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신다. 자식들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재활병원에 그냥 누워 계신다. 어머니가 갑자기 없어진 시골집에 아버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젠 아버지가 걱정이다. 여든 남자 노인의 일상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자식들은 다 타지에 나갔고, 먹고살기 바쁘다. 그 많은 농사일보다 세 끼 식사와 빨래, 청소가 문제다. 바지런한 어머니 덕에 평생 설거지 한번, 빨래 한 번 안 한 분이다. 번갈아 자식들이 온다지만 어머니 빈자리는 크다. 1년 사이 아버지는 많이 약해지셨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많아지셨고, 냉장고 반찬은 상하기 일쑤였다. 세탁기를 돌리는 법은 알려드려도 빨래는 그대로 쌓여있다. 진짜 세탁기 사용법은 모르시는 걸까, 아니면 빨래까지 손수 하면 자식들 오는 게 더 뜸해질까 염려해서일까. 예전같으면 기름값 많이 든다고 내려오지 말라던 분이 이제는 언제 집에 오냐고 물으신다.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노인돌봄 문제가 나의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어머니 계신 시골집은 늘 편안했었다. 따뜻한 시골 밥상이 풍성하게 차려졌고, 뜨끈한 방바닥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곤 했다. 하지만 이젠 반찬거리를 사 와서 밥을 하고, 몇 시간씩 청소하고 빨래를 돌려야 한다. 어머니가 담당했던 돌봄노동의 2주 치, 혹은 한 달 치를 하루 동안 몰아치는 셈이다. 그래도 늘 부족하다. 김치냉장고는 비어가고, 장독대 먼지는 쌓여간다. 상추, 토마토, 가지, 참외, 부추가 싱싱하게 자라던 텃밭에는 잡초만 남았다. 이제야 깨닫는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 바지런한 돌봄노동은 위대했구나. 아버지의 일상을 책임졌고, 타지에 나간 자식들과 손주들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힘이었다.

코로나가 물러갔다고 한다. 며칠 전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3년 코로나는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민의 일상을 지켜준 것은 의료, 돌봄, 청소, 배달, 운송, 급식 같은 필수노동이다. 국회에서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보호·지원에 관한 법률(필수업무종사자법)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대선 직전 고용노동부가 ‘필수업무 지정 및 종사자 지원위원회’ 첫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말하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지났다. 코로나 팬데믹 종식 선언마저 나온 지금, 우리 일상을 떠받치는 필수노동은, 그 노동자들은 어떻게 됐나.

최근 필수노동자 전체 규모를 처음 파악한 한국노동연구원의 ‘필수노동자 실태와 정책과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2022년 현재 전체 필수노동자는 486만명(전체 취업자의 17.3%)으로 2015년 이후 매년 20만~30만명씩 크게 늘었다. 특히 여성 필수노동자의 증가 속도가 훨씬 가파르고, 고령화 현상도 뚜렷했다. 지난해 필수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월 252만5천원(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74.4% 수준)이다. 우리 아이들이 매일 등교하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급식, 돌봄, 청소 등 필수노동자가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있다. 학교 안 필수노동자의 처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급식노동자는 일할수록 골병들고 폐암으로 죽어간다. 학교 돌봄노동자는 늘봄학교 같은 땜질식 돌봄정책에 지쳐간다. 청소노동자는 다른 학교비정규직이 다 받는 근속수당과 가족수당도 받지 못한 채 그 넓은 학교를 닦고 쓸고 있다.

분명 우리는 갈수록 많은 필수노동자 덕분에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필수노동의 가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는 마스크를 벗자 쉽게 그들을 잊었다. 대통령도 정부도 그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교육당국도 마찬가지다. 학교 안 필수노동자인 급식·돌봄노동자의 안전과 임금처우 개선에 제대로 된 대책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집권 1년 동안 비정규직 대책 한 줄도 내지 않는 대통령 아래 일한다지만 교육부도, 노동부도 너무 변했다.

돌봄노동, 필수노동은 기본적으로 몸과 마음을 쓰는 노동이다. 하지만 아이들마저 몸을 쓰는 돌봄노동을 저평가한다. 최근 교육격차를 주제로 다룬 교육방송에서 직설적인 장면에 충격을 받았다. 엄마 등살에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방송에서 “공부가 힘들지만, 나중에 몸으로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지금 열심히 해야 한다. 아빠가 몸 쓰는 일을 하면 힘들게 산다고 말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시골집에서 엄마가 사라지면서 엄마의 돌봄노동이, 살뜰한 ‘손발노동’이 우리 가족의 일상에 얼마나 필수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가 병실 침대에 누워 노동을 멈추듯, 우리 주변의 모든 필수노동자가 한날한시 일손을 멈춘다면 알게 될까? 우리 사회가 잘못 가고 있다는 걸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엄마 생각하듯 필수노동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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