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에 나설 기세다. 중국과 러시아가 상대다. 평화 보장을 천명한 대한민국 헌법 위반이다. 윤 대통령은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 않으니, 별문제 없다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중국과 러시아도 그렇게 생각할까.

기왕 국제적 전쟁에 대한민국 군대가 나서는 것이라면 윤 대통령이 총사령관의 자리에 서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미군사조약에 따라 전쟁이 나는 순간 한국군 총사령관은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저절로 교체된다. 70여년 전 이승만이 전시작전통제권을 갖다 바친 덕분에 윤석열 대통령은 자국군이 연루되고 자국 영토 안팎에서 벌어질 전쟁에서 주인이 아닌 객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기왕 전쟁이 벌어졌을 때 군 면제자인 윤 대통령이 미군 장성의 뒤꽁무니에 자리 잡는 게 행운일지 불행일지는 독자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다. 물론 평시에도 사실상의 작전권은 미군이 행사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전쟁의 불가마로 밀어 넣도록 판을 깐 사람 중 한 명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을 꼽고 싶다. 윤석열을 요직에 앉히면서 승승장구시킨 이가 문재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미동맹을 절대시하면서 우상화한 권력자가 다름 아닌 문재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결국 미국의 장난에 놀아나 남북관계 파탄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주권국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를 충분히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특히 헌법 위에 ‘한미 동맹’을 두고 그 덫에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세월을 허송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정권의 ‘한미일 동맹’ 노선은 문재인 정권의 ‘한미 동맹’ 노선의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 밑에 일본을 두고, 일본 밑에 한국을 두는 ‘미일한 동맹’으로 ‘한미 동맹’을 격상(?)시키는 것은, 일본의 안위를 한국의 안위보다 우위에 두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전략적 선택이다. 문제는 ‘미일한 동맹’이 입으로는 자유와 민주를 내세우는 ‘가치 동맹’이지만, 실제로는 북한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 ‘전쟁 동맹’이라는 데서 발생한다.

며칠 전 대구에서 포항을 가는 길에 경주 안강의 풍산금속 앞길을 지나게 됐다. 풍산금속은 포탄을 만드는 방위산업체다. 쉽게 말해 군산복합체다. 문재인 정권 시절 온갖 곳에 K를 갖다 붙이는 ‘K시리즈 국뽕’이 유행했는데, 가관은 ‘K민주주의’와 ‘K방산’이었다.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2021년 4월 한겨레신문 칼럼에서 “지금까지 동남아 국가들에 휴대폰과 무기를 수출했다면 이제는 민주주의와 번영을 수출해야 한다”고 썼다. 필자는 이를 ‘K민주주의 국뽕’의 일례로 평가한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그 나라의 역사적 맥락에서 성장한다. 공산주의 혁명을 수출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 혁명도 수출할 수 없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밀었지만, 4·19 혁명 때 한국 민중은 이승만 정권을 타도했다. 미국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그 정권을 지지했지만, 민중은 박정희의 쿠데타 자체를 거부하고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했다. 미국은 5·18 광주 무력진압을 묵인했지만 민중은 학살 배후에 있는 미국을 규탄하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저항했다. 미국은 사사건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아섰지만 한국 민중의 투쟁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발전해왔다.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미국과 긴장된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에 미국은 늘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와 미국과의 긴장 관계는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점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군사적 주권을 사실상 미국이 대리해 행사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1947년 3월 트루먼 대통령의 독트린 발표로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시작됐다. 그 직후 발생한 제주도 4·3사태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냉전 전략을 실험하는 첫 무대였다. 제주도민 학살은 미군의 기획과 승인하에 이뤄졌다. 4·3 사태는 반세기 전 고종이 파견한 조선왕조군에 의한 동학군 학살이 일본군의 기획과 지휘하에 이뤄진 사실과 역사적 맥락을 같이 한다.

역사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될 수 있는 지정학적 균열 위에 세워졌다. 이를 혹자는 ‘분단체제’나 ‘민족모순’이라 부른다. 이런 현실적 제약을 한물간 낡은 이론으로 치부하는 발상이 이른바 “개혁·진보 세력”에도 널리 퍼져 있다.

미얀마 같은 동남아의 ’후진적’ 국가에 ‘K민주주의’를 수출할 수 있다는 김종대 전 의원의 발상은 인권과 자유라는 미명하에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미국과 서방의 ‘십자군 전쟁’에 동참해야 한다는 윤석열의 발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다시 풍산금속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회사를 비롯한 한국형 군산복합체의 전성기는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 때였다. 당시 문 정권에 아부하는 이들은 ‘K컬처’를 넘어 ‘K민주주의’와 ‘K방산’, 심지어는 ‘K원전’까지 찬양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산 무기와 원전의 해외 수출이 대한민국 국력과 국격의 상승을 증명한다는 천박한 인식은 문재인 정권 때 급속히 퍼졌다(‘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이 유행한 게 노무현 정권 때임을 기억하자). 그러한 우민화 정책의 열매를 따 먹은 세력이 ‘검찰 공화국’ 즉 윤석열 정권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든 한국의 군산복합체든 세계 평화에 위협인 것은 마찬가지다. 평화국가라면 경제와 군사를 결합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환경국가라면 경제와 원전을 결합시키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원하는 국가라면 타국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 타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첫걸음은 내가 좀 안다고 남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한미 동맹’과 ‘K시리즈 국뽕’으로 윤석열 정권의 앞길을 열었다.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그랬듯이, 문재인은 윤석열에게 ‘세례’를 베풀어 윤석열의 길을 예비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은 문재인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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