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법률원)

정부가 지난 3월6일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른바 ‘주 69시간제’ 논쟁이 격화되었습니다. 특히 노동시간 확대에 거센 반대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개정안 자체를 전면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정부는 개정안에 대한 6천명 규모의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다듬을 예정이라 합니다.

정부는 일률적으로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확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줘 많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많이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라고 변명합니다. 물론 노동시간의 ‘확대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 자체가 사회적 합의의 후퇴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설령 정부의 주장과 같이 노동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만 노동시간 확대를 선택하고, 이후 상황이 바뀌면 그 선택을 철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더 많은 선택권이 생겼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정안은 절차적으로도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협상력을 약화시켜 근로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형해화 할 우려가 큽니다. 특히 ‘근로자대표제도 확대, 부분근로자대표제 도입’이 그러합니다. 새로 도입될 연장근로시간 정산단위 변경에 대한 합의 권한을 근로자대표에게 부여하며, 부분근로자대표제를 새로 도입하여 부문별로 연장근로시간 확대 등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근로자대표제를 확대하고, 부분근로자대표제도를 신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이번에 내놓은 개정안 취지 역시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 개인(근로계약 체결의 주체)이나 노동조합(단체협약 체결의 주체)과는 별도로, ‘근로자대표’라는 개념과 근로자대표가 행하는 ‘서면합의’라는 제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 서면합의를 요건으로 하는 제도는 주로 근로시간 유연화 요건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특례연장근로제, 보상휴가제, 재량근로시간제, 유급휴가 대체 등이 그것입니다.

근로자 개인이 작성한 근로계약서는 그 근로자 개인에게 적용되고, 노동조합이 작성한 단체협약은 그 노동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데, 근로자대표가 작성한 서면합의 역시 그 사업장의 전체 근로자들에게 적용됩니다. 근로계약서는 작성자인 해당 근로자에게만 적용되지만,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대표가 작성한 문서는 다른 근로자도 적용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조합 대표자, 또는 근로자대표가 전체 근로자들의 총의를 잘 대변할 수 있는지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총의를 대변하도록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운영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강조하고, 대표자의 선출 방식, 임기, 권한과 의무, 다양한 회의 기구의 권한과 역할을 까다롭게 정합니다.

근로자대표는 근로시간에 대해 전체 근로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폭넓은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근로자대표가 사실상 과반수 노조를 대신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20년 기준 14.2%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근로자대표의 권한은 정말이지 막강합니다. 그런데 권한 범위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대표를 선출하는 절차, 방법, 임기 및 권한 범위 등에 대해 현행법에는 아무런 기준이 없습니다. 근로자대표가 체결하는 서면합의도 법상 유효기간의 상한이 정해져 있지 않고, 법적 성격이 모호하며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과의 관계에서 서열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대표의 권한을 더욱 확대하고, 한 사업장 내에 부문별로 여러 명의 근로자대표를 두는 부분근로자대표는 시기상조입니다. 노동법의 근간을 이루는 근로조건 대등 결정이라는 대원칙을 실질적으로 훼손할 우려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근로자대표의 권한을 확대하기에 앞서, 근로자대표가 근로자들의 진짜 총의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법 공백을 메꾸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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