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진 변호사 (서비스연맹 법률원)

유통산업발전법은 월 2회 대규모점포의 의무휴업을 규정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과 일요일 노동에 내몰리는 유통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단비같은 제도이다. 유통산업의 특성상 법률 등으로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회사별로 휴일을 정해서 쉬는 것, 특히 평일보다 매출액이 높은 일요일에 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러한 특성을 반영해 유통산업발전법에서도 의무휴업일은 원칙적으로 공휴일 중에서 지정하되, 예외적으로 이해당사자와의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매월 둘째, 네째주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했다.

그런데 최근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대구시와 청주시는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변경했다. 의무휴업일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마트노동자들이 일요일에 쉬는 것을 반대했을 리가 없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형마트, 체인사업, 중소 유통업체 및 전통 상업구역 상인들과 같은 ‘이해당사자’와 성실한 협의를 거쳤다고 한다. 반면 마트노동자들은 이해당사자에 해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평일로 변경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이유는 비슷하다. 유통산업 트랜드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더라도 전통시장이나 중소 유통업체에도 미치는 영향이 줄었다는 것이다. 마트노동자들의 휴식권이나 건강권은 의무휴업일 도입 취지나 배경과는 거리가 먼 부수적,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므로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유통산업발전법 문언 해석에도 반할 뿐 아니라 2013년 의무휴업일 규정이 신설된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 취지에도 어긋난다. 2013년 법률 제11626호로 개정될 당시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 이유는 “대규모점포 등에 대한 현행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의 범위를 확대하고, 영업시간 제한 등의 의무위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한편 … (중략) … 대규모점포 등 종사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등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의무휴업일 도입의 목적에 마트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도 분명히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지방자치단체가 마트노동자들의 건강권은 부수적이고 반사적 이익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을 위해 합리적인 행정을 수행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저버린 주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주장에 의문이 드는 지점은 또 있다. 유통산업이 온라인 위주로 재편됐다면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줄었다는 것인데, 고객이 많이 찾지 않는 매장 영업을 굳이 일요일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그 시간에 매장의 문을 닫고 유통산업 종사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대형마트측은 쿠팡이나 마켓컬리같은 곳들은 의무휴업일 없이 365일 영업하는데, 대형마트만 의무휴업일이라는 부당한 규제로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우는 소리를 했다. 의무휴업일을 없애지 않는다면 최소한 평일보다 매출이 좋은 일요일 영업을 요구했다. 예상컨대 대형마트 읍소에 마음이 동한 몇몇 지자체장들이 적극적으로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는 ‘긍휼’을 베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당한 것은 의무휴업일이 아니라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온라인배송 시장이다. 당장 코로나19 상황이 위중하던 2020년~2021년 사이 온라인배송 물량이 폭증했을 때를 기억해야 한다. 업무 과부하로 얼마나 많은 택배·배송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쓰러졌는가. 코로나19로 특수한 상황이라서가 아니라, 애초에 쉬는 날 없이 365일 일을 할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규제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이다.

1884년 5월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는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의 교육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전개했다. 2023년 5월1일 한국의 유통노동자들은 모두가 함께 쉴 수 있는 ‘일요일 휴식권’을 요구하고 있다. 유통노동자들이 단지 잠만 잘 수 있는 휴식이 아니라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휴일을 위해 전국의 매장이여, 일요일에는 문을 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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