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여전히 ‘노동시간’이 문제다. 1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국제노동기구(ILO)가 출범한 1919년 채택된 1호 협약이 바로 노동시간 협약이다. 백 년도 전에 “1일 8시간 노동 또는 1주 48시간 노동”을 국제노동기준으로 채택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1주일 평균 69시간 일해도, 아니 1주일에 80시간 이상 바짝 몰아서 일해도 괜찮다’고 강변하는 정부 밑에서 살고 있다.

백 년 전 기준에도 미달하는 노동법도 문제지만 그런 수준의 노동법마저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다는 현실도 더 큰 문제이다. 600만명에 달하는 4명 이하 사업장 노동자, 농림·축산·양잠·수산 사업의 노동자, 감시·단속적 업무의 노동자 등은 근로기준법의 ‘근로자’여도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23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 노동자나 80만명 이상 플랫폼 노동자도 ‘근로자’ 여부에 대한 다툼으로 노동시간뿐 아니라 아예 노동법 자체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정부가 근로기준법의 탄력적, 선택적 근로시간제,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현행보다 더 개악하지 않아도,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백 년 전 노동시간 기준도 적용받지 못하는 셈이다.

노동시간 문제는 노동자의 생명,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된다. 장시간·심야 등 위험시간 또는 불규칙한 노동시간은 노동자와 사회 전체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위협한다. 예컨대 화물차 노동자의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고용 화물차 노동자에게도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를 도입한 목적은 바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확보다(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2조 13호). 배달노동자 10명 중 4명 이상이 최근 6개월간 교통사고를 겪은 것으로 조사된 국토교통부의 배달업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사고의 주요 요인은 “촉박한 배달시간에 따른 무리한 운전(42.8%)” “배달을 많이 하기 위한 운전(32.2%)”으로 집계됐다.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안전배달료 등 적정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시간의 문제는 노동자의 임금(보수) 문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연결돼 있다. 저임금 구조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 외에 적정한 소득을 얻는 경우, 장시간 노동의 규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신의 몸으로 운송하는 화물노동자에게 최저 운임을 보장함으로써 장시간, 위험 운행에 스스로를 내몰지 않도록 하는 안전운임제는, 그래서 2019년 국제 노·사·정이 채택한 ‘운수부문의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 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최저임금제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노동자 전체에게 적용 확대해야 한다는 플랫폼 노동조합들의 요구 역시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미 최저임금법은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한 있는 경우”(5조3항)에도 최저임금제를 적절하게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우리 최저임금법은 그 구체적 방안을 개발하지 않았지만, 미국·영국·인도·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 국가에서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도 법령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최저보수를 보장하는 제도를 시행한다.

ILO 출범 100주년을 맞아 2019년 ILO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노동기구 100주년 선언’은 노조할 권리를 포함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장시간 노동으로부터의 보호, 최저보수 내지 적정 보수의 보장, 안전과 건강 등은 고용형태나 직종과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지난해 ILO는 노동자 안전·건강에 관한 155호 협약 및 187호 협약을 ILO 회원국 모두가 준수해야 할 기본협약에 포함시켰다.

노동법이 인정하는 근로자이건 아니건, 사업체 규모가 작거나 가정이 노무제공 장소라도, 모든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리지 않으면서 적정한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지난 백여 년간 노동인권이 발전해온 양상이다. 2023년의 한국 정부는 이 양상을 정확히 역행하는 정책만을 고집하고 있다. 백 년에 걸친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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