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지난달 30일 부천 중동의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한 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그날 밤엔 두산인프라코어 인천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변압기 점검 중 폭발사고로 사망했다. 같은달 24일에도 이 공장에선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지붕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잘 알려진 대기업이든 이름을 알 수 없는 중소·영세 사업장이든 곳곳에서 노동자가 다치고 아프고 죽어 나간다. 매일 노동자들의 죽음은 업데이트된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늘어나는 산업재해 은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
지난달 중순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취소 소송 당사자였던 유족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근로복지공단에서 이상한 문서가 왔어요.” 전화통화로는 내용 전달이 어려워 당사자에게 그 문서를 가지고 사무실로 오시라고 했다.그 ‘이상한’ 문서는 다름 아닌 ‘소송고지서’였다. 공단을 상대로 사업주가 제기한 산재승인처분취소 소송에 당사자인 유족이 직접 참가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소송고지에도 불구하고 유족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고, 이 소송이 사업주 승소로 끝나 산재승인처분이 취소될 경우 이제껏 받았던 보험급여를 모두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특정 상황에 부닥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심한 공포감을 느낀다. 숲속에서 지나가는 뱀을 볼 때, 인적이 드문 어두운 골목길에서 기척이 느껴질 때가 그렇다. 이런 공포감은 본능적인 것으로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수백 만 년 동안 진화한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심한 공포감을 느껴 잽싸게 도망을 친 우리의 선조들이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드는 유전자를 물려준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에 관한 가장 원초적인 의식이 아닐까 싶다.선조들
지난 6일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 박선욱의 자살사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에 따른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정했다. 질병판정위원회는 “평소 고인의 성격을 감안할 때 중환자실에서의 교육 과정과 긴박한 업무수행이 고인에게 상당한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특히 간호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로 직장내에서 적절한 교육 체계 개편이나 지원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기학습 과정에서 일상적인 업무내용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고인은 정신적인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우리나라 노동자 3만8천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매년 2천400명이 목숨을 잃었고, 2016년에도 2천40명이 산재로 숨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 만인율은 0.68(2013년 기준)로 독보적 1위다. 일본·독일의 4배, 영국의 14배나 된다. 한국 교통사고에 비해서도 1.3배 높다. 산재 사망률이 줄어들고 있지만 자살을 제외한 다른 외부 원인 사망률과 비교하면 그 변화 속도가 같아서, 산재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대처가 없었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
지난달 26일 행정안전부가 하나의 자료를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회전교차로 설치사업이 완료된 129곳에 설치 전후 1년간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담은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상자는 설치 전(2015년) 147명이었으나 설치 후(2017년) 73명으로 50.3% 감소했다. 신호등이 없거나 불필요하게 신호대기 시간이 긴 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전환한 것만으로 교통사고 사상자가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다. 또 다른 교통사고 지표도 달라졌음이 확인된다. 이달 2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를 발표했는데, 201
결국 지난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 적용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것에 노사정이 합의했다. 그러고는 겸연쩍었던지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와 임금보전 대책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용자가 임금 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지급이나 할증률 조정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애초 장시간 노동 문제는 노동자들의 건강·안전과 결부된 문제였다. 노동시간을 연간 1천800시간대로 단축하겠다는 정부의 공약 달성은 돈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회구조와 인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불
산재보험의 근거가 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조(목적)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업을 시행해 근로자의 업무상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해’ 보험을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업무상재해를 보상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신속성과 공정성을 제시한 것이다.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어떤 재해를 업무상재해로 판단할 것인가, 즉 업무상재해 인정기준(동법 37조)을 제시하고 있다. 업무와의 관련성(공식 용어로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을 판단하기 쉽
사업장에서 직업성 질환 발생이 우려될 때 우리는 어떻게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을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매우 다행스럽게도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명확히 했다. 노동자 스스로 급박한 위험을 판단하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장 재해 예방과 개선에 대한 최소한의 통로가 명료해진 셈이다. 하지만 업무상사고와 달리 업무상질병은 노동자가 위험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면이 많고, 그로 인해 위험의 객관적 평가에도 보다 다양한 전문적 방법과 과정이 요구된다. 직업성 질환에서 이 과정의 결과는 흔히 예방과 개선의 최소한의 통로에 접근할
2018년 산업재해보상제도는 많은 분야에서 변화가 있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자체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시행령과 하위규정이 많이 바뀌었다. 이는 제도 변화가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근로복지공단 행정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의 보상행정 분야에서 달라져야 할 지점을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우선 산재요양 신청과 조사·판정 과정의 신속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공단은 재해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하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처
‘안전은 권리입니다.’ 지난 1일 안전보건공단이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했다. 안전보건공단은 새 슬로건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원·하청, 국적, 성별을 불문하고 안전은 차별 없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덧붙여 안전권 확보를 위한 모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해당 슬로건이 개발됐다고 그 의의를 밝혔다.딱 맘에 드는 슬로건이다. 지난 슬로건인 ‘조심조심 코리아’와는 안전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과 철학이 확연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나 재해의 책임을 개인 실수나 과실로 전가하고, 안전조치 미흡에 대한 사업주
최진실법, 장그래법, 태완이법….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법들이 있다. 길고 복잡하거나 익숙지 않은 법안 명칭을 쓰고 어려운 법 취지를 공문서로 밝히는 것보다 이름으로 대표되는 서사를 국민이 공감하는 경우 법의 취지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처럼 제안자 이름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법이나 제도 미비로 인해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경우가 많다.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람‘들’이 제·개정된 법·제도를 통해서 보호받고 안전한 삶을 영위하고 다시는 ‘제2의 누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
얼마 전 진료실로 한 노동자가 찾아왔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 식당에서 조리업무를 하는 분이었다. 몇 달 전 일하다가 허리를 삐끗해 집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좋아지지 않았고, 다리 저림 증상까지 발생해 서울에 있는 유명한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추간판탈출증이 확인됐다고 한다. 시술을 받았고, 어느 정도 좋아지기는 했는데 아직 통증이 다소 남아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일하다가 허리를 다친 노동자들이 보통 겪는 전형적인 사례였다. 일하는 공장과 사는 집에서 그다지 가깝지 않은 우리 병원을 찾은 이유는 아직 남아
공무원연금법은 1960년 1월1일 시행된 사실상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제도다. 일반 노동자에게 적용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1964년 1월1일 시행된 것과 비교해 볼 때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는 공무원연금법의 일부 장에 불과했다. 2016년 7월26일 시행령 개정으로 인해 보상제도가 확대되고 공상 심의 전 전문조사제, 용어개선(공무상사망→순직, 순직→위험직무순직) 등이 이뤄진 바 있으나 이는 일부 개선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9월21일 공무원 재해보상보험법이 공무원연금법에서 분리돼 제정·
한 젊은이의 죽음에 빚지고도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자들과 일터에서 현장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많은 문제들이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터의 다양한 위험과 위험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이 조금 강화된 제재로 가시적인 해결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와 그동안의 무책임에 대응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생각할 것이다.그동안 부족했던 사업주의 위험 인식과 관리가 강화되는 것은 너무
새해가 시작됐으나,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 연말 거리에서 마주했던 풍경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님의 사망사고 이후 전국 곳곳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설치된 시민분향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번주 말에도 전국 곳곳에서 고 김용균님의 죽음에 근본대책을 내놓으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차가운 겨울 거리를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인의 이름을 따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것으로
지난 연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두고 벌어진 막전막후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2018년 벽두에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 일환으로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사망만인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일터를 조성하기 위해 ‘산재 사망사고 감소대책’을 수립해 발표했다. 국회에도 서울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가 숨진 열아홉 살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발의된 것을 비롯해 무려 2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제출됐
올 한 해 노동계 최고 관심사는 최저임금 인상,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그리고 최근 고 김용균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다시 점화된 위험의 외주화 방지일 것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생활임금을 보장받기 위해, 과로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또한 이것들은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이미 상당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이 ‘표준임금’이 돼 버린 현실을, 그동안 휴일 16시간의 초과노동을 주당 근무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고용노동부의 꼼수를,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간
작은 건설폐기물 수거업체를 방문해서 노동자 상담을 했다. 스물여섯 젊은 남자의 혈압이 190/110으로 나왔다. 병원 입원 상태라면 당장 정맥에 혈압강하제를 투여해야 할 정도로 높은 수치다. 깜짝 놀라 더 자세히 상황을 물었다. 그는 혈압약을 먹은 지 두 달째였으나 하루 한 알 투약으로 조절이 안 되고 있었고 2조2교대제, 흔히들 말하는 ‘죽음의 맞교대’를 하고 있었다. 생활 습관도 엉망이었다. 혈압약을 먹고 있음에도 매일 소주 두 병에 담배 한 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건강해 보였다. 일하는 데 몸에 무리가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근경색을 앓은 후 직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노동 말고는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었던 그는 주치의에게 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심초음파 결과를 본 심장내과 의사는 걱정스런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일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절대 일하지 마세요.”다니엘은 심한 심부전 상태였기에 의사는 업무 부적합 소견을 철회하지 않았다. 월세도 못 내고 전기세도 밀린 다니엘은 실업자연금을 받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그러다 전기도 끊기고 월세 집에서 쫓겨나기 바로 전 연금 혜택을 결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