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8 일 08:00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어떤 경영자 눈으로 본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위험의 외주화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올 한 해 노동계 최고 관심사는 최저임금 인상,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그리고 최근 고 김용균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다시 점화된 위험의 외주화 방지일 것이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생활임금을 보장받기 위해, 과로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또한 이것들은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이미 상당수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이 ‘표준임금’이 돼 버린 현실을, 그동안 휴일 16시간의 초과노동을 주당 근무시간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고용노동부의 꼼수를,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간 위험의 외주화를 바로잡기 위한, 즉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보수야당과 경영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상한제 정착으로 자영업체와 중소기업이 줄도산할 것이고, 위험의 외주화 방지 대책(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 안전보건에 관한 원청 책임성 강화 등)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과연 그럴까?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인 필자는 현재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부설 향남공감의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필자는 향남공감의원에서 환자 진료와 함께 경영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위험의 외주화는 우리와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의료계는 최저임금 인상에 매우 민감한 집단 중 하나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주축이라 할 1차 의료기관(소위 동네의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의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간호조무사다. 지금까지 일부 고참급을 제외한 상당수의 간호조무사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올랐고 동네의원들에서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정작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망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올랐다고는 하나 이전에 워낙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지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의원에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직원들이 있었고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그 수준에 맞춰 급여를 인상했는데, 그것이 전체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우리 같은 동네의원은 시기별 매출 차이가 상당하다. 감기환자와 건강검진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연말에는 북새통을 이뤘다가 검진시즌이 끝나고 감기가 잠잠해지는 연초가 되면 한산해진다. 얼마 전 탄력근로제가 논란됐을 때 우리도 탄력근로제를 시행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 봤다. 약간의 인건비 절감 효과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대부분 기업들이 그렇듯이) 평상시 충분한 여유인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가 그다지 크지는 않을 듯했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보통 연초 한산한 시기에 이뤄지는 직원들 연차휴가와 교육·훈련, 의료기관 평가 준비 등 진료 외적인 업무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최근 노동부가 발표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활용실태조사 결과’에서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기업이 3.2%,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3.5%에 불과했다는 것은 탄력근로제가 경영 측면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대부분 생산 과정이 그렇듯이 의료서비스를 생산하는 과정에도 위험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부담스러운 업무가 존재한다. 우리 의원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업무 중 하나는 내시경 보조와 세척업무다. 내시경을 하는 동안 수면상태에서 몸부림치는 환자를 붙잡다가 손가락이 꺾이고, 침대에 누운 환자를 이송하다가 허리를 삐끗하고, 내시경 세척을 하다가 손목과 팔꿈치가 나가기도 한다. 업무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중인데, 논의 과정에서 내시경 세척업무 전담 파트타임을 일상적으로 두자는 의견도 있었다. 경영하는 입장에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골치 아픈 업무를 외주화하는 것은 큰 유혹이다. 설비 개선에 소요되는 각종 비용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 해당 업무를 하는 직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위험도 상당하다. 내시경 세척업무는 내시경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인 감염관리를 위해서 중요하다. 소홀히 했다가는 자칫 감염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경영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안전을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비용을 줄이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 보수야당과 경영계는 왜 이렇게 크게 반발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에서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는 기업들이 가장 시급하게 개선할 사항으로 꼽은 것은 ‘단위기간 확대’가 아니라 ‘제도의 경직성 완화’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정착, 위험의 외주화 방지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뿐만 아니라 경영활동 경직성을 증가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경영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일부 규제들은 일정 수준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 방지 등 안전 분야에서는 확실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규제를 강화하고 어떤 규제를 완화할 것인가? 이것을 조율하고 조정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이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가 정부 능력을 평가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많은 논란과 저항이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상한제 정착, 위험의 외주화 방지 자체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촛불 민심을 등에 업은 정부의 성과다. 노동계는 개혁의 방향과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보수야당과 경영계 눈치를 보는 정부·여당을 적극적으로 견인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정수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