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

새해가 시작됐으나, 아직 체감하기 어렵다. 연말 거리에서 마주했던 풍경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님의 사망사고 이후 전국 곳곳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설치된 시민분향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번주 말에도 전국 곳곳에서 고 김용균님의 죽음에 근본대책을 내놓으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차가운 겨울 거리를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고인의 이름을 따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것으로 혹자들은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호도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이 땅 ‘김용균’이 위태로운 것은 마찬가지다. ‘김용균법’ 통과 배경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제재할 법·제도 정비 필요성에 대한 유족과 시민사회의 들끓는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김용균님과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 그의 동료들은 해당 법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영계의 강력한 반발을 이유로 국회가 원칙적으로 위험한 업무 도급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던 정부 원안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누더기가 돼 정부 원안이 담았던 기본적인 취지마저 훼손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책위의 주요 요구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고 김용균님의 유족인 부모님과 시민대책위는 싸움을 멈출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4일에는 경기도 화성의 한 공장에서 자동문 설치 작업 중이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는 일제히 애도 논평을 내놓고 근본적인 안전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논평이 달갑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레토릭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끼는 것이 과연 필자뿐일까.

과연 ‘김용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어떤 것보다 노동자가 안전보건 문제에서 개선 당사자이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노동조합이 있다면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조합이 여럿인 복수노조라면 여럿의 노동조합 모두를 통해, 노동조합이 없다면 노동자 개인이 안전보건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가 원청 소속이냐, 하청 소속이냐, 협력업체 소속이냐 등 어떤 지위에 있든지 상관없이 안전보건 문제를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고, 그걸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단적으로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 사례만 봐도 그렇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김용균과 그의 동료들은 지난 3년간 28번이나 일터 개선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요구는 매번 묵살됐다. 원·하청 권력관계 속에서 외면당했다. 지난해 그들은 국회 국정감사장을 찾아 “정규직화 안 해도 좋으니 제발 죽지만 않게 해 달라”며 호소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서부발전 현장에서 김용균과 같은 죽음이 벌써 12번째다. 그동안의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무심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이번 사망사고 직후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실시 중이지만,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제기할 수 있는 통로는 가로막혔다. 사고 조사를 실시한 상급단체와 지역명예산업감독관들의 참여도 보장되지 않았다. 이렇게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

“컨베이어벨트 힘이 세서 발을 헛디디면 빨려 들어갈 수 있다” “컨베이어 고무벨트가 힘이 세서 이물질이 생기면 사람이 직접 손으로 꺼내거나 공구를 사용해야 하는데, 삽이 다 부러지고 철근이 다 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적도 있다”는 김용균님 사망사고 직후 언론을 통해 밝혀진 동료들의 진술은 그동안 안전보건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당사자들이 줄기차게 제기했던 현장 개선 요구를 조금이라도 반영했다면 참혹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일터 안전보건 문제는 전문가가 따로 있지 않다. 누구보다 기계·기구 설비를 일상적으로 취급하는 노동자가 설비 이상이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대응할 수 있다. 실질적인 개선 방향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이들의 개선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은 사고는 물론 현장노동자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제기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래야만 예방도, 근본적인 대책마련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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