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이 진통 끝에 ‘합의’됐다.

민주노총이 빠진 채 노사정은 11일 오후 노사정위원회에서 긴급하게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소집해 전임자임금 지급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조건 없는 3년 유예’에 합의했다. 이밖에 직권중재는 폐지키로 하되 필수업무유지의무를 부여하고 대체근로는 허용키로 했다.

파국 → 합의 ‘급선회’ 왜?

타결이냐 파국이냐 기로에 섰던 로드맵 논의가 갑자기 합의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노동부의 ‘결심’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한국노총은 예정대로 11일 오전 11시께 기자회견을 갖고 결렬시 투쟁계획을 밝혔으나 일단 이용득 위원장의 단식농성은 하루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는 노동부에서 기자회견 전 한국노총에 ‘조건 없는 3년 유예’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이뤄진 것이란 후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부는 한국노총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안고 가야 할 대상”으로 분명히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11일 아침 간부회의를 통해 ‘조건 없는 3년 유예를 받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어려운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이견을 보이기보다 합의를 이뤄야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1시께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이 빠진 채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 이상수 노동부 장관, 조성준 노사정위원장이 참여한 가운데 긴급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소집, ‘조건 없는 3년 유예’를 수용키로 했다고 노사정 대표자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들은 이를 두고 ‘노사정 대타협’이라고 강조했다.<사진>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이들은 “이번 합의는 노사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자율적 합의정신을 존중하고 보편적 국제노동기준과 우리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해 마련된 것”이라며 “법시행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어려운 경제적 여건 속에서 노사관계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직권중재 폐지하지만…체면살리며 ‘주고받기’

이어 이들은 직권중재는 폐지하되, 필수공익사업에 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을 추가키로 했다. 또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도입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키로 했다.<표 참조>

노사관계 로드맵 핵심쟁점(6개)
구분현행선진화방안9.11 노사정 합의사항
전임자
급여
-전임자급여지원 금지, 부당노동행위로 사용자처벌(2006년까지 유예)-급여지원 금지, 법령이 정한 기준 내 급여지원은 예외(기준 초과시 제재)조건 없는 3년 유예
*민주노총 : ILO 권고사항이므로 법률 자체를 폐지하고, 노사 자율화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
-2006년부터 복수노조 허용,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마련-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마련
1안)자율적 단일화→과반수노조→과반수득표노조
2안)자율적 단일화→조합원수에 비례해
조건 없는 3년 유예
*민주노총 : 유예반대, 교섭창구 자율화 실시
대체
근로
-파업시 사업내 인력을 통한 대체 가능
-신규채용·하도급·파견금지
-대체근로제한에서 공익사업제외(공익사업 대체근로 허용)
-신규채용·하도급 허용하되 파견은 금지
-‘직권중재 폐지’ 하되 필수업무 부여, 대체근로 인정
-필수공익사업 범위 조정, 필수공익사업 한해 인정(항공관제·혈액·폐수처리 포함 등 정부안대로)
*민주노총 : 철도와 석유 필수공익사업장서 제외, 혈액 등 추가 포함에 반대, 대체근로허용 및 필수업무유지에 반대, 공익사업장 범위와 긴급조정 현행 유지에 찬성
필수공익
사업 및
직권중재
-필수공익사업에 직권중재제도-필수공익사업 개념 및 직권중재 폐지
-공익사업은 파업시 최소업무 유지의무 부과
긴급
조정
제도
-노동부장관이 중노위원장의 의견을 들어 결정
-30일간 쟁의행위 중지
-조정실패시 강제중재
-긴급조정기간 연장(30→60일)
-강제중재는 현행유지
직권중재, 필수공익사업, 대체근로와 함께 논의
*9/2 깊이 논의되지 않음
손배·
가압류
-노동조합 또는 조합원의 손배책임 제한 규정 없음
-신원보증인도 연대책임
-급여채권의 1/2 압류금지
-노동법 개정보다 관계법(신원보증법 및 민사집행법) 개정
-신원보증인의 책임제한 설정
-임금의 압류대상제외 범위 확대조정
-조합비 수입의 일정부분 압류대상에서 제외
-민주노총 : 폭력·파괴를 수반하지 않는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등 요구(형벌까지 병과되는 상황에서 근로자가 감당하기 곤란)
-경총 : 민사법 체계에 미치는 큰 사안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논의는 부적절, 불법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당연하며 일부 불합리한 행사에 대해서는 법원의 업무절차 개선 등으로 기 개선

반면 철도·석유를 제외해달라는 민주노총 요구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대체근로는 ‘파업시 사업내의 인력을 통한 대체(신규채용과 하도급)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근로기준법 관련 부당해고는, 부당해고 판정시 노동자가 신청시 금전보상을 허용하고 부당해고 벌칙조항(현행 5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 벌금)을 삭제키로 했다. 대신, 노동위원회가 구제명령에 대해 이행을 명하도록 하고 이행담보 수단으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해 확정된 이행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를 부과토록 했다.

이밖에도 경영상 해고시 현행 60일인 사전통보기간을 기업규모 등을 기준으로 60일에서 30일까지 차등 설정키로 하되,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 3년 이내 동일업무에 국한해 정리해고자에 대한 재고용의무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또한 유니온숍도 ‘무력화’ 되게 됐다. 이들은 “유니온숍이 체결된 경우에도 노조를 탈퇴해 다른 노조를 조직하거나 가입한 경우에는 해고 등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한다(복수노조 시행과 연계해 2010년 1월1일부터 시행)”고 했다.

이는 전임자, 복수노조를 제외한 로드맵 과제 중에서 노동부와 노·경총이 서로 체면을 세워주며 ‘주고받기’를 한 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이상수 장관은 “이번에 노동계는 부당해고 벌칙 조항 삭제, 경영상 해고 사전 통보기간 단축 등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를 위해 많은 양보를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파국은 피했으나…“노동개혁 후퇴” 비판도 거세

이번 합의에 대해 민주노총을 제외한 노사정은 파국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상수 장관은 “앞으로 경제발전을 위해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단했다”며 “조건을 만들어놓고 하는 것도 좋지만 제도 도입을 위해 노사가 실질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이용득 위원장은 “실제 이번 합의에서 더 의미있는 것은 해고사유와 해소시를 서면 통보케 하고 정리해고시 재고용의무를 법제화 하도록 한 것은 커다란 진전”이라며 “실질적으로 700~800만명 노동자가 혜택을 볼 이 같은 점을 놓치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앞으로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정부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소위 기존 노·경총의 ‘5년 유예’에서 ‘3년 유예’로 기간만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지적이 높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 단결권인 복수노조 허용을 조건 없이 3년 유예키로 한 것은 ‘개혁 후퇴’가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이날 노사정대표자회의 논의에서 배제된 민주노총의 항의가 거세게 이어졌다. 이들은 노사정위 앞에서 항의시위를 가진 데 이어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린 노사정위 21층으로 진입해 몸싸움을 격한 항의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야합’이라고 주장하며 입법예고 중단을 촉구하고 있어 또다른 파국이 예고되고 있다. 이날 민주노총 시위대는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이용득 위원장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는 한편 한국노총 앞까지 진출해 항의시위를 벌였다.<사진>

한편 이상수 장관은 “정부는 오늘 합의된 내용 그대로 입법예고 할 것”이라며 “정부내 의견을 모아 13일께 입법예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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