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경찰의 ‘건폭몰이’ 수사로 건설노조 조합원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가 분신해 사망한 직후인 지난해 5월과 같은해 6~8월 심리조사를 비교했을 때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 정도도 심해졌다. 노조탄압 국면이 이어지며 고용불안이 심화한 영향이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자들은 알코올에 의존하며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두 차례 조사, 스트레스 고위험군 8.5%p 증가

10일 <매일노동뉴스>가 건설노조 ‘공안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 최종 결과를 입수해 살펴봤다. 응답자 평균 연령은 52.23세, 노조 경력은 평균 10.34년이었다. 남성이 98.5%로 대부분이었다.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횟수는 ‘1~2회’가 78.8%로 가장 많았고, ‘3~4회’가 13.9%로 뒤를 따랐다.

건설노조는 지난해 5월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1천여명을 대상으로 심리 설문조사를 배포해 같은해 6월 중간집계된 295명에 대한 결과(1차 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실태조사는 같은해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두 달간 같은 내용으로 추가 설문(2차 조사)을 실시해 총 411명을 분석한 최종 결과다.

1차 조사와 2차 조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사회심리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8.5%포인트 늘어났고 건강군은 0.3%포인트 줄어들었다.<그래프 참조> 사회심리 스트레스 항목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크고 작은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상태인지, 전반적인 행복감을 느끼며 생활하는지를 점검하는 도구다.

실태조사를 분석한 장경희 두리공감 상임활동가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 등이 낮아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라며 “노조탄압이 계속됨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건강 지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장 활동가는 “과거 노조파괴 사업장(23.1%)이나 비정규직을 해고한 사업장(48.6%)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했을 때보다 높은 수치가 나왔는데, 이는 건설업 특성상 돌아갈 사업장이 없다는 점이나 공갈·협박 등 범죄자로 취급되는 점이 더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심리상담·병원진료 경험 4.9%에 그쳐

다른 심리지표도 소폭 증가했다. 2차 조사에서 중간 정도의 우울 혹은 심한 우울을 겪고 있는 경우는 46.7%, 불안을 겪고 있는 경우는 67.4%로 각각 1차 조사에 비해 1.6%포인트, 1%포인트 증가했다. 최근 2주 동안 자살 혹은 자해를 생각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 31.8%가 ‘그렇다’고 답했다. 1차 조사보다 1%포인트 늘어났다.

지난해 3~4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10여년 경력의 건설노동자 A씨는 “소환조사 날짜가 잡히면 처음에는 무섭고, 조사를 받고 나서는 황당하고 억울했다”며 “검찰로 송치되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가 있어서 여전히 불안하고 잠을 못 자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수사에 따른 압박감·좌절감을 알코올에 의존해 버티려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탄압 이후 알코올 섭취량에 대해 “늘었다”고 답한 경우가 62%로 절반 이상이었다. 빈도에 대해서도 ‘거의 매일 마신다’고 답한 경우가 16.8%나 됐다. 반면 심리상담이나 병원진료를 경험한 경우는 전무하다시피했다. 응답자 95.1%가 “없다”고 답했다. 심리상담 또는 마음건강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72.7%가 “그렇다”고 답했다.

장경희 활동가는 “병원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일부고, 대부분 술로 많이 해결하려 한다”며 “50대 남성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위치나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힘들다’ ‘도움이 필요하다’ 같은 말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1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심리적 위기 실태조사 결과를 포함해 ‘노조탄압이 건설현장 노동안전보건에 끼치는 영향’ 토론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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