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이 6월9일 서울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건물 입구에서 규탄 행동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근절하겠다며 시작한 경찰의 250일 특별단속이 13일로 만료했다. 건설노조를 표적으로 단속을 벌였지만 무더기 수사에 그쳤을 뿐 건설현장의 개선에는 별다른 효력이 없었다. 도리어 건설노조 활동이 위축되는 동안 부실공법에 따른 안전사고 위협이 커지고 국민 우려를 키운 셈이 됐다.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경찰의 특별단속으로 노조와 지부 사무실이 20여차례 압수수색을 당했고, 조합원 1천700여명이 소환조사 대상이 됐다. 구속자는 35명(석방자 포함)에 달한다. 이번 집계는 건설노조만 대상으로 했다. 특별단속 활동을 종료한 경찰은 조만간 공식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건설노조 외 다른 노조 소속이거나 비노조원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클 전망이다.

주요 혐의는 공갈이다. 노조 집계에 따르면 소환조사 대상자 1천700여명 중 공갈과 공동공갈로 혐의를 받은 조합원이 627명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업무방해(545명), 강요·공동강요(397명) 등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근절하겠다고 강조한 타워크레인 월례비 관련 조사는 228명(공갈 소환조사 중복)이 받았지만 구속이나 기소는 없었다. 노조 타워크레인분과 관계자는 “월례비를 빌미로 건설노동자를 조폭으로 매도하고 무더기 수사를 했지만 정작 기소는커녕 무혐의 수사종료가 빈번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떠들썩한 규모에 비해 수사당국의 유죄 입증은 미흡하다. 250일간 경찰의 구속영장 발부율은 15일 기준 54%에 그쳤다. 청구 52건, 발부 29건, 기각 23건이다. 지난해 검찰의 영장 발부율 81.3%와 격차가 크다. 잦은 구속영장 기각이 특별단속이 무리한 수사였다는 방증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형사법 우위의 법원, 무리한 수사에도 “유죄”

사실 이례적인 수사였다. 경찰의 건설현장 특별단속은 노조활동을 형법상 위력 행사로 해석한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별법 성격을 가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무시하고 형법을 들이민 것이다.

노조는 우선 전국의 권역별 철근·콘크리트 협의회, 타워크레인 임대사와 산별중앙교섭을 하고 건설현장에서 채용과 단체협약 적용을 두고 현장교섭을 한다. 교섭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집회를 열거나 현장의 안전대책 미흡을 고발하는 활동을 해 사용자쪽을 압박한다.

경찰은 교섭 중 집회나 안전대책 소홀 등을 “채용을 목적에 둔 공갈·협박”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채용요구, 쟁의행위, 안전대책 소홀 고발 등은 개별적으로 모두 정당한 행위임에도 채용요구를 위해 쟁의행위와 안전대책 소홀을 활용해 사용자를 공갈·협박했다는 주장을 밀어붙였다. 일부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 특별단속 후 첫 사법부 판단으로 주목받은 창원지법은 지난달 5일 검찰이 기소한 노조의 조합원 채용 요구와 노조 전임비 요구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을 진행한 강희경 부장판사는 “노조활동이나 노동자 권익 보호라고 해도 피고인 행동은 수단이나 방법에서 사회통념상 허용 범위를 넘었다”고 봤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형사법 우위인 법원 상황에서 집회 등을 공갈·협박 등으로 평가하는 기조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며 “노동 3권과 노조법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배경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정황이 낳은 비극이 건설노동자 분신이다. 고 양회동 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노동절인 5월1일 아침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분신해 이튿날 사망했다. 그는 유서에 “정당한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썼다.

분신사망까지 발생했지만 경찰은 수사를 강행했다. 특히 50명이던 특별단속 관련 특진인원을 단일 수사로는 가장 많은 규모인 90명으로 확대하고 열을 올려 실적 쌓기용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도 받았다.

건폭몰이에 정부 눈 쏠린 사이 무너져 내린 건설안전

▲ 무너진 경기도 안성 폴리프라자 건설현장의 모습. <자료사진 경기도소방안전본부>
▲ 무너진 경기도 안성 폴리프라자 건설현장의 모습. <자료사진 경기도소방안전본부>

무엇보다 특별단속의 결과는 건설산업 개선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노조의 채용요구 근절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건설산업의 고질적인 불법인 자재 누락이나 부실시공 같은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4월 발생한 인천 검단 자이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다. 이 사고는 건설현장의 ‘카르텔’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였다. 지난달 지하주차장 붕괴사고 원인을 조사한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는 “도면 분석 결과 구조설계상 기둥 32곳에 모두 전단 보강근이 필요하나 15곳에서 빠져 있었다”며 “도면 확인·승인 과정에서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실제 공사 중에는 설계상 필요한 전단 보강근마저 누락돼 있었다. 도면의 설계와 실제 시공, 그리고 도면과 시공을 감시하는 감리 모든 영역에서 부실이 드러난 셈이다. 발주처와 시공·시행사, 감리사의 담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정부는 뒤늦게 이를 ‘카르텔’로 지목하고 분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산업 자체가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택 인·허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2%가 감소했고, 주택 착공은 50.9%가 감소했다. 인·허가와 착공이 대폭 감소하면서 건설사 폐업은 줄을 잇는다. 국토부의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종합 건설사 폐업신고는 7월까지 306건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170건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건설업의 위기는 지난해 이미 예견됐다. 쌓여 있는 주택 미분양에 더해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이 요동치면서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의 자금조달에 이상이 생겼다. 동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자재 값이 치솟아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오르면서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노조 수사에만 집중할 뿐 산업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부동산대책으로 실수요자가 대출을 쉽게 받도록 하는 대출시스템만 손봤을 뿐이다.

“발주·감리에도 책임 강화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해야”

전문가들은 건설현장 정상화를 위해 노조 수사를 중단하고 건설안전특별법을 재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안전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시절 제안한 법이다. 건설노동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발주처와 설계와 실제 시공을 감시하는 감리사를 규율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게 뼈대다. 특히 건설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발주처에게 책임을 지워 무리한 공기단축 요구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안전조치 등 책임이 강조된 법안이나, 발주처와 시공·시행사, 감리사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 ‘카르텔’ 분쇄에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정작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마저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오랫동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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