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고 양회동 지대장의 빈소에서 열린 노조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간담회에서 한 건설노조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서울 건설현장에서 20년 넘게 형틀목수로 일한 A씨는 올해 두 차례 경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조합원 채용 강요 혐의로 지난 3월 첫 번째 조사 이후 4월 두 번째 조사를 받을 때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또 출석 요구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지난달 1일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분신 이후 이러한 증상은 더 심해졌다. A씨는 양 지대장 사망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와 경찰이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규정하고 노조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수사대상자 10명 중 3명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상당수는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응답자 절반 우울·불안 ‘심각’

건설노조와 심리치유 전문단체 두리공감은 13일 오전 고 양회동 지대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달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2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2주 동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자해할 생각을 했는지’ 물어 본 결과 응답자 10명 중 3명(30.8%)은 그렇다고 답했다. “거의 매일”이라고 답한 경우도 5.4%(16명)나 됐다. “2주간 7~12일”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1%(18명)였고, “2주간 2~6일”이라고 답한 경우는 19.3%(57명)였다.

사회심리 스트레스를 측정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55.3%)은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심리 스트레스 항목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상태인지 등을 점검하는 도구로, 점수가 높을수록 전문가 진단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건강군에 속하는 응답자는 3.7%에 그쳤다.

우울이나 불안을 겪는 노동자들도 적지 않았다. 절반에 가까운 45.1%가 중간 정도의 우울 혹은 심한 우울을 겪고 있고, 10명 중 6명 이상(66.4%)이 불안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조에 대한 수사 전후를 비교했을 때 수면의 질이나 알코올 의존 정도도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상담 또는 병원진료 경험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자 95.6%가 “없다”고 답했다.

일한 경력이 길수록 마음 건강 상태가 좋지 않게 나타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경력이 3년 이하인 노동자와 21년 이상인 노동자를 비교했을 때 사회심리 스트레스·우울·불안 평균점수가 각각 8.97점, 6.28점, 4.36점 차이가 났다. 스트레스·우울·불안 점수가 높을수록 자살·자해 생각을 한 빈도도 늘어났다. 자살·자해 생각을 “한 적 없다”고 답한 응답자의 우울 평균 점수는 6.2였는데 “거의 매일” 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23.44로 4배 가까이 높았다.

분신사망 뒤에도 수사 계속, 심리상태 악화 우려
“제2·제3의 양회동 막으려면 노조탄압 중단해야”

더 큰 문제는 신체적·심리적 건강상태가 악화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고 양회동 지대장 사망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계속됐고, 오히려 경찰은 ‘건폭’ 단속 특진 인원을 늘리는 등 수사를 독려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이달 25일까지 200일간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19차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19명이 구속되고 1천173명이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노조는 파악하고 있다.

제2, 제3의 양회동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노조탄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경희 두리공감 상임활동가는 “심리적 위기라는 것은 개인이 혼자 힘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버티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며 “이러한 위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는데 이는 국가폭력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활동가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심리적 위기를 낮추는 길”이라며 “노조탄압 수사를 중단하고 일상적 노조활동을 하던 이들이 어느 순간 파렴치범이 돼 버린 데 사과와 노조원 명예회복이 이뤄져야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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