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양회동 열사의 죽음 이후에도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십자포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양회동 열사의 분신을 건설노조 동료가 방조했다는 주장에 사과할 의향이 없으며 여전히 “매우 석연치 않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심지어 사건의 목격자인 건설노조 부위원장에게 왜 말리지 않았느냐며 다그치기까지 했다. 경찰에서조차 자살방조 정황은 없다고 발표한 사안에 대해 장관이 열사의 유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뱉어 낸 발언이다.

같은 날, 건설노조 의뢰로 ‘치유와 연대의 공동체 두리공감’이 진행한  ‘노조 공안탄압과 국가폭력으로 인한 심리적 위기 긴급점검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공안탄압으로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중 우선 취합된 295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분석된 실태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55.3%가 사회심리스트레스 고위험군으로, 45.1%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사회심리스트레스나 우울 고위험군이 일반적인 사업장에서 11% 수준으로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국가폭력에 직면한 건설노동자들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신건강의 위험도가 높은 집단인 것이다. 보고서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그나마 비견할 만한 집단은 10년 동안 노조파괴가 진행된 사업장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 정도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다음 대목이다. 응답자의 30.8%가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해 봤다고 답했고, 그중에서도 5.4%는 거의 매일 그런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공안탄압 이후 수면의 시간과 질의 변화를 묻는 질문에도 약 80%의 노동자들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12~13% 정도의 노동자들은 심각한 수준의 불면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수면과 관련된 지표는 자살 및 자해와 충분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일종의 경고등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수면문제가 자살·자해시도에 직접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제2, 제3의 양회동 열사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건설노동자들에게 조직적인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국가라는 점이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특정 노동자집단에 지속적으로 가해진 정서적 폭력이 낳은 비극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프랑스의 국영통신사였던 프랑스텔레콤에서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35명의 직원이 자살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초기에는 그저 민영화에 이은 구조조정이 불러온 불안과 스트레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업장에서 그토록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결국 경영진의 매우 구체적인 ‘해고 작전’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은 정리해고 대상자들에게 자진퇴사하라는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전보발령을 반복했다. 한 희생자는 유서에 회사가 ‘공포경영’을 하고 있다고 적었다. 훗날 공개된 문건에서는 이 회사의 CEO가 간부모임에서 “내년에는 좀 더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창밖으로 내던지든지 문으로 내보내든지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직원들을 더 많이) 해고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구조조정을 당하고 있는 사업장, 노조파괴가 지속되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극단적으로 악화하고 그로 인해 비극이 벌어지는 것을 노동자 개인이 받는 스트레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개인의 정신건강이 무너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는 한 축인 일터가 무너지는 상황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가 쓰러질 때 그를 부축해 줘야 할 직장과 동료, 공동체가 그와 함께 무너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일터이고 동료이자 버팀목이었던 것은 ‘노가다가 아닌 노동자’로 살게 해 준 노동조합이었는데, 국가가 지금 그것을 처참히 부수고 있다.

한편, 자살에 관한 많은 연구에서 극단적 선택을 막거나 줄이는 요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사회적 지지’다. 즉, 심리적 위기에 처한 개인이 주변으로부터 정서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을수록 극단적 위험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건설노동자들을 둘러싼 상황은 어떤가? 시작부터 대통령이 앞장서서 ‘건폭’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들을 통해 조직폭력배들과 건설노동자들을 동일시해 버렸다. 국토부 장관은 기어이 자살방조라는 망언을 반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건설노동자들은 지원과 지지를 받기는커녕 사회적·정서적으로 더 고립되고 있다.

혹자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두고 ‘경찰조사 받는 사람이 스트레스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지금 건설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말 그대로 심각한 위기상황임을 경고하고 있다. 개인적 스트레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인 건설노조가 파괴되고 있는 상황, 사람답게 일하는 건설현장을 만들어 왔다는 자긍심을 부정당하는 현실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국가의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 진행되고 있다.

다시금 국가폭력을 멈추고 양회동 열사와 건설노동자들에게 사과하라고 한들 지금의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했을 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 반복할 테다. 그러니 차라리 다가오는 프랑스테렐콤(현 오랑주) 전직 임원들에 대한 확정판결을 잘 살펴보길 권한다. 연쇄 자살 사건이 벌어지고 10년이 지난 2019년, 늦었지만 프랑스 법원은 전직 임원들이 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직장내 따돌림을 조장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조직적으로 만들었음을 인정했다. 노동자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각 임원들에게 징역형과 벌금형, 법인에도 벌금형을 선고했다. 물론 당시 CEO도 판결에 항소하면서 “구조조정은 그렇게 진행되기 마련이고 경영진이 자살한 직원들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당신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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