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토교통부가 타워크레인 조종사에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무더기 면허정지 처분을 했는데 행정처분 심의위원회에서 대부분 기각 또는 불처분 결정을 받았다. 행정처분이 확정된 경우는 1명에 불과했다. 정부가 ‘건폭 몰이’를 하며 남발한 타워크레인 조종사 행정처분이 결과적으로 무리한 ‘노조때리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3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조종사 25명(자격정지 18명, 경고 7명)이 국토부에서 ‘성실의무 위반’ 통지를 받았는데, 23명이 행정처분 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기각·불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1명은 지방국토관리청에서 자체 처분 철회(행정종결)를 진행했고, 나머지 1명은 경고 통보를 받았다. 여기에 비조합원(현 건설노조 가입) 1명(정지), 한국노총 소속 4명(정지)의 심의위 결과를 포함하면 최소한 30명 중 29명이 기각·불처분 또는 종결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 3월 타워크레인 조종사를 대상으로 한 ‘성실의무 위반 판단기준’을 마련한 뒤 한 달간 작업거부 등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해 성실의무 위반이 의심되는 54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중 26명에 대해 자격정지 처분 절차, 18명에 대해서는 경고조치 절차에 착수했다. 지방국토관리청은 변호사와 공인노무사·건설기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행정처분 심의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심의했다. 건설노조 조합원 25명은 지난 6월부터 행정처분 심의위 개최 통지를 받기 시작했고 청문절차 등을 거쳐 5개월여만인 최근에서야 최종 결과를 통보받았다. 

안전상 이유로 작업중단, 행정처분 대상
“작업지시가 정당·적법했는지부터 살펴야”

문제는 성실의무 위반의 판단 근거가 된 사유가 대부분 안전을 위해 이뤄진 작업거부였다는 점이다. 자격정지·경고 통지를 받은 당사자들이 각 지방국토관리청에 제출한 의견서를 분석한 결과 △안전상 이유로 작업 일시 보류 혹은 중단 △작업지시서 및 중량물 사용계획서 요구 등 이유로 조종석을 이탈하거나 ‘작업거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총 소속 3명의 사례를 보면 △갱폼 미세조정 작업거부 △T크레인이 타워크레인 작업구간을 침범해 작업 일시 중단 △순간풍속 기준치(초당 15미터) 초과로 운행 중단 등이 이유가 됐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상 크레인 작업시 ‘인양할 하물을 바닥에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작업’을 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순간풍속이 15미터를 초과하면 타워크레인 운전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안전보건공단 건설기계·장비 사망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 작업가이드(타워크레인)에 따르면 조종사는 가동 전 작업구간의 장애물을 확인해야 한다. 모두 안전수칙에 따른 적정 작업조치에 해당한다. 

정당한 업무지시로 보기 어려운 데도 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광주전라타워크레인지부 사례를 보면 하청업체가 타워크레인 △권상·하, 선회, 횡행 동작을 동시에 하도록 지시 △철근 지상조립 △갱폼 인양작업시 고정철물 미리 해체 같은 부적절한 작업지시를 한 정황이 포착된다. 안전수칙상으로는 △구분 동작 △철근 지상조립 금지 △갱폼 타워크레인에 매단 상태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부를 대리한 김성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는 “위반 행위와 관련해 애초에 사실관계가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았다”며 “비용절감과 공기단축을 위해 무리한 작업지시를 하는 경우 위험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사례까지 정당하지 않은 작업거부로 본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적 내기에 급급해 무리한 처분을 남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천경기타워크레인지부 관계자는 “국토부에서 일부의 주장만 듣고 통지서부터 보낸 것 같다”며 “어떤 작업이 잘못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건수를 올리려는 것으로 보였다. 심의 과정에서도 위압감을 느끼도록 조사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저속운행으로 경고 확정 … “장비 특성, 현장 상황 무시한 조치”
“밥줄로 압박하면 안전조치도 위축”

유일하게 경고처분이 확정된 경우도 적정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25년 경력의 타워크레인 조종사 A(53)씨는 <매일노동뉴스>에 “해당 장비를 가지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작업했는데 너무 억울하다”며 “CCTV 등 현장을 제대로 확인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공사 현장대리인이 ‘초기 운용과정에서 혼선이 있었지만 이는 조종사만의 잘못으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며 선처를 주문하는 내용의 확인서를 제출했지만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A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저속운행했다는 취지로 경고조치를 확정했다.

A씨처럼 ‘의도적 작업 지연’ 등을 이유로 자격정지 통지를 받았다가 심의위 결과 기각된 사례가 있다.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는 특정 장비가 통상의 크레인보다 가동속도가 느리다는 점, 작업현장이 해풍 등 영향으로 풍속에 유의해야 했던 점 등을 근거로 고의로 작업을 지연한 게 아니라고 소명했다.

애초에 국토부가 제시한 판단기준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민호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 위원장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업자는 판단하지 말고 원청이 시키는대로 하라’는 식”이라며 “‘면허정지’를 무기로 내세워 노동자를 옥죄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더기 행정처분 시도가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을 위축시켜 안전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행정처분 시도가 다시 이어질 것을 우려해 현장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지시를 이행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 관계자는 “기각 결정으로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잘못한 것도 없이 5개월가량 심의 절차가 진행되면서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라며 “과거에 안전조치 요구를 한 사안조차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민호 위원장은 “잘못이 없어도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면 위축되는 것처럼 행정처분도 똑같다”며 “면허는 ‘밥줄’이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4월 국토부 특별점검 발표 당시 원희룡 장관은 “정부는 특별점검 종료 이후에도 상시점검 체계를 구축해 건설현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불법행위 단속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며 “현장에서 보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신고에 나서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 건설노조
▲ 건설노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