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간 추가 유예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이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맹탕 대책을 재탕, 삼탕하는 것으로는 중대재해의 60% 이상이 발생하는 작은사업장 위험을 막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공은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손으로 넘어갔다.

안전관리자 채용 지원 예산 빠지고
공동 안전관리자 지원 사업 확대

당정은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당정협의회’를 열고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2년간 1조5천억원을 투입해 중소기업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산업안전 대진단 및 종합지원체계 구축 △안전보건관리역량 확충 △작업환경 안전개선 지원 △민간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 등 4대 분야, 10대 과제를 선정했다. 하지만 알맹이는 지난달부터 고용노동부가 민주당을 세 차례 찾아 제출한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부가 기존에 제출한 대책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안전보건관리역량 확충 분야다. 민주당 제출 자료에서는 신규 사업으로 ‘중소기업의 안전관리자 채용시 지원금 지급 사업’을 제시했는데 이번에 삭제됐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졌던 사업이다. 노동부는 당초 50명 미만 사업장이 안전관리자를 채용할 경우 1명당 인건비로 2년간 한시 월 15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내놨다. “노사 모두가 강하게 요구”한다고 강조하며 200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83만개 이르는 50명 미만 사업장 중 0.06%에만 혜택이 돌아가고, 그마저도 한시 지원이 중단되면 안전관리자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대신 공동 안전관리 전문가 지원사업이 당초 대책보다 확대됐다. 지역·업종별 협회·사업주단체 등이 공동으로 안전관리 전문가를 채용하면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다. 규모는 600명이다. 기존 136억원이 배정돼 378명 규모였는데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공동 안전관리 컨설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다만 관련 법령 정비가 없으면 공동 안전관리자가 사업장 점검이나 조치에 대한 권한이 없어 작동하기 어렵다. 600명의 안전관리전문가를 월 250만원이라는 인건비로 채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때 쓴 문구 ‘복붙’도

노동부는 “50명 미만 중대재해 취약기업에 획기적 지원한다”고 했지만, 재정투입 규모인 1조2천억원은 2021년에는 1조1천억원, 2022년과 2023년 1조2천억원 규모와 차이가 없다. 이외에는 기존 정책과 다르지 않아 재탕, 삼탕이라는 비판받는 정책들이 나열됐다.

다만 산업안전 대진단 및 종합지원체계 구축 분야에서 기업이 자체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안전보건관리 역량 확충 지원 분야에서 나온 안전보건관리자 2026년까지 2만명 양성 목표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나온 내용과 같다. 컨설팅 지원 확대는 지금껏 해온 컨설팅 규모를 확대한다는 내용에 그친다. 민간 주도 산업안전 생태계 조성으로 모기업이 협력업체 지원시 소요비용 50% 정부 분담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계만 ‘환영’ 노동계는 비판
민주당은 ‘맹탕 대책’ 수용 거부

재계는 이번 대책을 환영하며 정부·여당과 발을 맞췄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되면 기간 연장 이후 추가 유예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앞서 법 적용을 준비하지 않은 정부의 사과, 2년 뒤에는 유예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와 경제단체 약속, 2년간 구체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가져오면 법개정을 논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중기중앙회의 이날 기자회견은 민주당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2년 재유예 물꼬를 트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경총도 “지원대책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안전관리시스템 구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을 내고 “지난해와 다를 바 없는 지원대책”이라며 “노동부는 노동자의 생명을 존중해야 할 본분을 가진 정부부처임을 자각하라”고 당부했다.

민주당은 실효성 없는 대책을 또다시 들고 왔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 대책은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 관련 공공기관들이 해왔던 사업들을 취합해서 나열한 맹탕 대책”이라며 “해당 대책들을 성실히 이행하면서 동시에 50명 미만 사업장에 법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부칙 1조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내년 1월27일)부터 50명 미만 사업장에도 시행하도록 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부칙을 개정해 2026년 1월27일부터 시행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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