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숨진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원청 대표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선고 형량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법정형 하한선(징역 1년 이상)의 절반에 그쳤다. 법 시행 이후 ‘최저형’으로 기록됐다. ‘솜방망이 처벌’이 굳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된다.

‘처벌불원’ 고정 사유 들어 형량 감경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4단독(장병준 판사)은 지난 21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산 연제구 소재 성무건설의 대표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성무건설 법인에는 벌금 5천만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원청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대표는 각각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청 작업반장은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하청 법인에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사고는 지난해 3월25일 부산 연제구의 한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주차타워 지하에서 단열재 부착작업을 하던 중국 국적의 이주노동자 B씨가 3톤이 넘는 무게의 리프트(차량운반기)가 상승하면서 하강한 균형추와 방호울 사이에 머리가 끼여 숨졌다. 당시 현장소장은 B씨가 작업하고 있는데도 아무런 신호 없이 리프트에 탑승해 기계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공사금액은 60억7천여만원이라 중대재해처벌법(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이 적용됐다. 원청 대표 A씨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및 반기 1회 이상 점검(4조3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 및 반기 1회 이상 평가·관리(4조5호) △안전보건 관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 마련 및 개선 이행 점검(4조7호) 등 시행령상 의무사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원청 대표의 선고 형량은 가벼웠다. 법원 판단은 이전 다른 사건들과 거의 흡사했다. 장 판사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인정한 점 △피해자 유족들과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 △ 피해자 과실도 사고 발생에 기여한 점 △사고 발생 후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 점 등을 형량 감경에 적용했다. 앞서 “사업장 종사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반복되는 중대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피고인들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부분과 상반된다.

“무조건 엄벌 안 돼” 원청 주장에 발맞춘 법원

특히 A씨가 대표이사이던 지난해 원청과 하청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은 점도 유리한 양형요소로 참작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기본적인 안전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원청은 리프트 운전과 관련해 직원 배치나 방호장치에 관한 사항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고, 신호수와 리프트가 갑자기 작동될 우려를 방지해야 할 작업지휘자도 두지 않았다.

검찰의 낮은 구형량이 선고 형량을 낮춘 배경으로 지목됐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A씨에게 징역 2년을, 원청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대표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원·하청 업체에는 각각 1억5천만권과 1천만원의 벌금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측은 결심공판에서 “무조건적인 엄벌주의로 가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10월 ‘6호 선고’인 공동주택 관리업체 국제경보산업 대표의 선고형(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보다도 낮다. 부산지역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부산운동본부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과 비교해도 처벌에 큰 차이가 없다”며 “솜방망이 처벌이 결국 현실이 됐다”고 비판했다. 항소기간인 7일이 지나지 않아 현재까지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