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12월 임시국회는 여야 간 대립으로 난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민생법안을 조속히 해결해 보겠다며 가동한 ‘2+2 협의체’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가 여당에서 민생법안으로 제시됐다는 소식은 참으로 황당하다. 감히 ‘민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이 법을 처리할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민생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참담할 따름이다. 자신의 사업장의 위험에 대해 무관심하고 묵인하고 방치해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가 아무 책임을 지지 않게 두는 것이 어찌 민생을 살리는 일일까. 진짜 민생을 걱정한다면 산재사고 사망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50명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망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정부와 여당은 사업주 단체 조사결과만 앞세워 50명 미만 사업장 대다수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여론을 호도한다. 그러나 불과 열 달 전인 지난 3월 고용노동부 의뢰로 한국안전학회에서 실시한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실상은 다르다. 안전보건 준수 의무를 이미 갖췄거나 준비 중인 50명 미만 기업이 81%에 달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묻는 질문에서도 ‘이미 갖추었거나 내년까지 구축한다’는 응답이 53%로 과반을 넘었다. 현장에서는 차근차근 준비한 상황인데 정부는 이러한 자체 조사결과는 무시하고 재계의 입장만 대변한다. 재계는 이 법이 방대해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준수하기 어렵고 전문인력 확보 및 안전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용이 과도해 어려움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잘못된 정보로 사실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새로운 법의 적용에 대해 막연한 걱정이 앞설 수는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하는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과 책임 범위는 불확실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충분히 구체화한 내용이다. 게다가 안전보건 전담조직과 같은 항목은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규정으로 사업장의 규모가 작으면 지켜야 하는 안전보건 조치 의무도 더 적고 단순하다. 그런데도 여태 준비가 안 됐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비용 문제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실제로 한국노총의 사업장 안전보건 진단 및 위험성평가 컨설팅 인증 사업을 보면 3년간 소요된 예산은 평균 3천100만원으로 규모가 적을수록 투입비용도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주가 지켜야 할 의무 중에 안전보건관리에 필요한 예산 편성과 집행이 있지만 하한액은 정해진 게 없다. 그야말로 안전한 일터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일 뿐이다.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는 정부와 여당에서 먼저 내놓았지만 ‘조건부로 논의할 수 있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시키고 50명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 예방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민주당이 내세운 조건은 법 적용을 준비하지 않은 정부의 사과, 2년 뒤에는 유예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정부와 경제단체 약속, 2년간 구체적인 안전관리 대책을 가져오라는 것인데 그 어떤 것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과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저 정치 잇속 챙기기 위해 결국 여당과 합의를 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사과나 약속은 도대체 산재예방에 무슨 실효성이 있겠는가. 민주당은 현 정부의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경전에서 이긴 듯한 기분을 느끼며 우쭐해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벌어지는 산재사고 사망을 줄이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안전관리 대책은 어떤가. 여태 준비가 안 됐다던 상황이 노동부에서 2년간 지원금을 조금 더 늘리고 교육과 컨설팅을 50명 미만 사업장 중 턱없이 적은 일부에 제공한다고 달라질 것인가. 오히려 법 적용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는 게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 것에 조금이나마 효과적일 것이다.

지난 19일,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적용유예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반수가 훨씬 넘는 71%의 국민이 바로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한다는 데 찬성했다. 정부와 여야는 엉뚱한 곳에서 민생을 찾지 말고 안전한 사회, 차별없는 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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