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정부가 산재 예방·보상 정책을 논의·결정하는 기구인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심의위원회에서 양대 노총 참여를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에서 양대 노총 추천 위원을 배제한 뒤 비슷한 일이 노동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보상예방심의위뿐 아니라 최저임금위원회를 포함해 다른 위원회까지 양대 노총이 배제될 수 있는 조치를 확대할 예정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하루 만에 내려
노동부 “표현 실수, 양 노총 추천 인사 우리가 판단해야”

1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17일 산재예방심의위의 근로자대표 추천권을 총연합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및예방심의위원회는 근로자·사용자·공익 대표 각 5명씩 총 15명으로 구성한다. 노동부 장관이 위원을 임명하거나 위촉하는데 근로자 대표 위원은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이 추천한다. 심의위에 속한 전문위원회의 위원 추천 권한도 총연합단체인 노조가 가진다. 현재 근로자 대표는 민주노총 관계자 2명, 한국노총 관계자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총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을 ‘근로자단체’로 바꾸고, 전국을 대표하는 사용자 단체로 규정한 내용은 ‘사용자단체’로 변경했다. 이렇게 되면 양대 노총이 아닌 노동단체도 추천권한을 갖게 된다. 노동부가 양대 노총 추천 인사는 배제하고 다른 노동단체 추천 인사로 채울 가능성이 적지 않다.

노동부는 “소수 단체의 참여권 독점과 과도한 영향력 행사를 줄이고, 산업재해 보상 및 예방정책에 보다 다양하고 실질적인 노사의 요구가 반영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 통로를 마련해 소수의 노사단체가 아닌 다수의 근로자와 사용자의 의견을 대변하고 약자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고자 한다”고 시행령 개정 제안 이유를 들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자 대표는 원래 노동부 장관이 임명하게 돼 있고, 양대 노총의 추천을 받도록 돼 있는데 지금은 추천 인원이 근로자 대표 명수에 맞게 온다”며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 오기는 했지만, 총연합단체의 추천을 받은 뒤 노동부가 판단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입법 배경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입법예고안이 실수로 나갔고, 취소해 입법예고로서 효력이 없다”며 “‘근로자단체’라든지 표현이 정확하지 않아 취소했다”고 밝혔다. 설명을 종합하면 재입법 예고시 세부 문구는 조정될 수 있겠지만 큰 틀의 내용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운영 다른 위원회로 확산 예정

노동부의 이런 행보는 주요 정부위원회에서 양대 노총 소속·추천 위원을 배제해 온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지난 3월 복지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민주노총 추전위원의 회의 태도를 거론하며 강제 해촉했다. 두 달 뒤 국민건강보험법상 재정운영위원회도 양대 노총의 직장가입자 대표위원 추천권을 박탈했다. 정부의 노조 회계장부 제출 정책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시기 교육부도 자격정책심의회에서 양대 노총 추천 인사를 거부했고, 기획재정부는 7월 열린 56차 세제발점심의위원회에서 사전 통보 없이 한국노총 추천위원을 뺐다.

양대 노총이 아닌 ‘근로자단체’가 근로자 대표 위원을 추천하도록 하는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 움직임은 노동부 소속 다른 위원회로 확산할 예정이다. 노동부가 운영, 관여하는 최저임금위원회·고용보험위원회·외국인력정책실무위원회·임금채권보장기금심의위원회는 모두 총연합단체인 노조가 추천한 근로자 위원이 참여하도록 관계법령이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관련 기구들에 관한 개정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양대 노총 대표성 부정, 사회적 대화에서 노조 배제”

노정관계는 더욱 얼어붙을 전망이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근로자 대표 추천권을 총연합단체에게 주도록 규정한 것은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해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며 “‘근로자단체’로 규정하면 정부의 우호적인 노조 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우려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심의위는 산재보험료율, 특수고용직의 최저휴업급여뿐만 아니라 정부의 산재 예방·보상 정책 전반을 다루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수십 년 동안 양대 노총이 참여해 왔다”며 “양대 노총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존의 정책방향을 잘 알고 있어 양대 노총이 전문성이 가장 높은 분야이기도 하다. 황당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양대 노총이 근로자대표 추천권을 가졌던 것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봤던 것”이라며 “정부 정책의 일련의 흐름을 보면 양대 노총의 대표성을 부정하고 사회적대화 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겠다는 철학이 녹아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양대 노총도 근로자단체에 포함된다”며 “‘총연합단체인 노조’ 문구를 바꾼다고 해서 양대 노총과 (대화) 안 하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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