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노조 조직률’의 근거가 되는 ‘노동조합 정기 현황조사’ 방식이 달라진다. 노조 임원의 주민등록번호 대신 생년월일을 기입하도록 하고, 그동안 조사하지 않았던 산별노조 하부조직의 대표자, 소재지, 조합원수를 사업장별로 구분해 작성하도록 했다. 정부는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기재사항을 정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노조 회계공시 의무대상 사업장(조합원수 1천명 이상)을 솎아내고 산별노조 독립성에 균열을 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산별노조 하부조직도
사업장별 대표자·조합원수 보고 의무화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 이런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노동부는 “노조법 별지 서식의 불필요한 정보 수집 요소를 제거하고 누락된 법정사항을 추가하는 등 정비해 노조와 단체협약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달리 행정관청의 과도한 정보수집으로 보이는 항목이 다수 신설됐다. 임원 주민번호는 개인정보라며 정보수집 대상에서 삭제하고 대신 생년월일을 기입하도록 했지만 연락처도 함께 적도록 했다.

특히 산별노조 산하조직 현황보고를 강화했다. 현행은 명칭과 소재지 대표자, 노동자수, 조합원수만 적으면 된다. 그러나 입법예고안은 산하조직의 명칭을 1~3수준으로 적도록 했고, 산하조직 사업자등록번호(고유번호), 사업(장)명, 사업(장) 소재지도 요구했다. 예컨대 기존에는 ‘금속노조 조합원수 19만명’ 형태로 작성했다면 개정령안은 ‘금속노조 ○○지부 □□지회 조합원수 1천명’을 보고하는 식이다.

노조법 위임 범위 넘어선 ‘과잉 행정입법’

노동부는 시행령에 맞추려는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노조법 시행령 10조4항에 따르면 노조가 행정관청에 조합원수를 통보할 때 둘 이상의 사업(장) 노동자로 구성된 단위노조는 사업(장)을 기준으로 보고해야 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시행령과 달리 시행규칙상 서식은 이런 사항이 누락돼 이번에 포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률이 정한 범위보다 넓다. 노조법 13조(변경사항의 신고 등)는 신고 사항으로 △명칭 △주된 사무소 소재지 △대표자 성명 △소속 연합단체 명칭 △규약변경 내용 △변경 임원 성명 △조합원수를 통보하도록 했다. 사업(장) 기준은 시행령이 정한 기준이다. 오기형 금속노조 조사통계국장은 “법이 정하지 않은 의무를 위임 범위를 넘어서 규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회 입법이 아닌 하위법령으로 노조에 대한 행정개입을 강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조 회계공시 의무화도 시행령 개정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해 양 노총에서 헌법소원 심판청구 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노림수는 노조 회계공시 강화?
조합원 1천명 이상 사업장 파악 쉬워져

이런 노림수는 노조회계 공시와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다.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은 “밖으로는 개인정보를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단위노조 규모와 현황을 자세히 파악해 회계공시 의무화와 관련한 행정개입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며 “노조운영에 정부 등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98호에도 반한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산별노조 근간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별노조는 사업 또는 사업장 범위를 넘어선 단일노조인데, 이를 각각 구분해 보고하라는 것 자체가 산별노조를 부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양대 노총 배제 전략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매년 1월 노조의 정기 현황 통보서를 제출받아 이를 바탕으로 해당 노조와 조합원, 조직률 현황을 집계해 이듬해 노조 조직률 통계를 발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조 조직률은 최저임금위원회를 비롯한 노사정 3자 논의기구 구성에 기초자료로도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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