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목 한국노총 정책2본부 부장

최근 윤석열 정부는 각종 정부위원회에서 양대 노총을 배제하고 있다. 3월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위원을 해촉한 데 이어, 이번 달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 구성 과정에서 양대 노총을 건너뛰었다. 지난해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등의 대통령 직속기구에서 노동계 위원을 배제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개별 법령에 의거해 운영되는 정부위원회에서도 양대 노총을 찍어 내고 있다. 민관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든 정부위원회에서 노동계를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가장 많이 쓴소리를 내뱉은 양대 노총이 꼴보기 싫어서라고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단견에 가깝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위원회에서 매우 큰 축이 되는 노동을 빼면 자본을 대표하는 사용자단체와 교수·연구자 같은 전문가집단을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된다. 그간 노동계가 단순히 조합원의 이익만 대변하지 않고 임금근로자, 나아가 일하는 사람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 영역에서 배제되면서 노동자를 위한 목소리는 정책에 반영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반대로 정부의 정책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리에 앉혀 놓고 정부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정권은 마치 자신들이 내놓은 정책이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처럼 포장하게 될 것이다. 국민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책적 정당성을 인정받겠다는 심보다.

여기서 우리는 정부위원회가 왜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위원회는 행정부가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아주 조금이나마 반영하기 위해 운영하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일환이다. 여기서 시민사회라는 단어는 흔히 이해되는 ‘시민사회단체’라는 협소한 개념이 아닌, 엘리트 중심의 대의체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공식적·비공식적인 사적 행위자들이 모두 포괄되는 광의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아래 복잡해진, 그리고 더욱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를 계속해서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관료·교수 등 엘리트 집단만의 의사결정이 아닌, 소위 ‘민관협력’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와 함께 정책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를 위한 장치가 정부위원회인데, 이러한 존재 목적을 망각한 채 정부위원회는 점점 망가지고 있다. 망가진 정부위원회에서 내린 의사결정은 국민들에게 이익보다는 해가 되기 쉽다.

정부·여당이 파렴치한 짓을 이토록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노동조합을 때릴수록 지지율이 다소간 반등하거나 하락세가 멈추는 현상을 지난 1년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임기 초반이라고는 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지지율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정권의 정당성과 정책집행에 대한 문제제기가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략적 행위다. 하지만 자해에 가까운 행정부의 이 행위가 곧 시민들로 하여금 정책집행에 대한 불신을 초래해 일종의 청구서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 같은 비상식적 행위가 이제 막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직도 구성되지 못한 차기 장기요양위원회나 내년 새로이 구성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다른 정부위원회들 또한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친정부 성향 전문가집단의 부상이다. 관료집단과 함께 우리 사회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전문가들 중 정부 성향에 맞는 사람들이 빈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거수기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 뒤에 숨어서 사실상 정권에 충성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하는 전문가들이 더욱 활약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직장인들의, 나아가 모든 노동자와 시민들의 이해관계와는 유리된 정책이 우리 앞날에 놓이게 되었다.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