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이 화두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입법예고 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진화에 나섰다. 현행 ‘주 52시간’과 ‘주 60시간’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몰아치기 노동’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과로’를 넘어 노동시간이 한꺼번에 몰리는 ‘폭로(暴勞)’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시간 노동, 특히 집중근무로 과로해 숨지거나 쓰러진 노동자들과 유족을 연속으로 심층 인터뷰한다. ‘몰아서 일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짚는다. 과로사 통계를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핀다.<편집자>

“아버지는 매우 근면 성실하셨어요. 부득이한 사정이 없으면 연차도 거의 쓰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환경미화라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근무지가 변경된 이후 쓰레기양이 폭증하면서 처음으로 ‘너무 힘들다’고 자주 호소하셨습니다.”

경북의 한 기초자치단체 소속 50대 환경미화원 정로운(가명·사망 당시 59세)씨의 딸은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 “이렇게 일하다가는 내 명에 못 살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회상했다. 딸은 생전 아버지를 ‘책임감이 강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항상 출근시간 전에 근무지에 도착해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1991년 고용계약기간 1년 이상인 비정규직 상용 환경미화원으로 입사했다.

25년간의 근무는 고됐지만 정씨는 버텼다. 그런데 2016년 크리스마스가 ‘악몽’이 됐다. 정씨는 휴일인 성탄절에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미리 환경미화원 대기실에서 자다가 오전 4시께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 부검의가 ‘심근경색의증’을 진단하며 현장에서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새벽 5시가 출근시각이라 전날 대기실에서 머무르며 출근을 앞당기기 위해 ‘쪽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이날 최저 기온은 영하 4도에 달했다. 퇴직을 1년 앞둔 시점이었다.

근무지 변경에 출근 ‘2시간’ 당겨져
“너무 힘들다” “일이 거북하다” 호소

정씨가 죽음에 내몰린 배경에는 ‘장기간 몰아치기 노동’이 있었다. 정씨는 사망 전 약 5개월간 일주일(6일 기준)에 평균 60시간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7월 근무지가 면에서 읍으로 바뀐 영향이 컸다. 출근시간대가 기존 오전 7시에서 새벽 5시로 당겨져 근무시간이 2시간 늘었다. 퇴근시간인 오후 6시까지 휴게시간(아침·점심식사 각 1시간)을 빼면 하루 11시간을 일한 셈이다.

실제 출근시간은 더 빨랐다. 유족이 확보한 초과근무확인서에 따르면 정씨는 숨지기 전 약 한달간 출근시각(오전 5시)보다 30~40분 먼저 근무지에 도착했다. 청소업무 준비를 위해 빨리 출근했다고 유족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씨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늦지 않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환경미화원 대기실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정씨 동료는 “정씨가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했기 때문에 일을 마친 후 대기실에서 주로 자면서 밥을 해 먹으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휴가 역시 쓰기 쉽지 않았다. 정씨 딸은 “근무자가 3명밖에 되지 않아 아버지가 쉬게 되면 다른 동료들의 업무부담이 커져 쉽게 연차를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다른 환경미화원들도 아버지같이 휴가를 마음대로 못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4년 4월부터 사망 직전의 근무기록을 보면 이틀 이상의 장기휴가를 사용한 기록은 없었다.

업무량도 늘었다. 월평균 쓰레기 반입량이 이전 근무지와 비교해 4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도 정씨를 포함해 단 3명이서 읍내 모든 청소를 도맡았다. 근무일지에는 3명의 작업일지가 적혔다. 정씨 딸은 “아버지는 당시 영하의 날씨에도 악취가 나는 무거운 쓰레기를 날랐다. 로드킬당한 동물 사체를 치우는 일까지 맡았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씨는 이때부터 가족에게 “고되다” “일이 거북하다” 등 고통을 호소했다. 정씨 딸은 “아버지에게 전화할 때마다 항상 피곤에 찌든 목소리였다”며 “본인도 모르게 초저녁에 잠들어서 잠결에 짧은 안부만 주고받고 통화를 종료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간 정씨와 함께 살았던 아들도 아버지가 힘들어했다고 기억했다. 아들이 “아빠 나이도 있는데 좀 쉬운 곳으로 옮겨 주는 것은 안 되냐”고 제안했지만, 정씨는 “그것은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고시 기준 미달 이유로 산재 불승인
항소심 “피로누적, 과중한 업무 지속” 인정

정씨가 ‘주 평균 60시간’을 일한 정황은 짙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사망 전 24시간 이내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유족의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했다. 1주 평균 업무시간을 4주간 59시간, 12주간 58시간으로 계산해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봤다. 노동부 고시는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을 12주간 60시간과 4주간 64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아울러 정씨의 음주 이력을 토대로 공단은 사인을 ‘알코올성 심질환’으로 추정했다.

유족은 공단이 근무시간을 잘못 산정했다며 2020년 1월 소송을 냈다. 실제 출근시간이 아닌 오전 5시로 일괄 계산했다는 것이다. 또 노동부 고시와 달리 새벽근무에 대해 야간근무시간 30%의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면 12주간 64시간28분, 4주간 63시간40분으로 공단 업무시간보다 대폭 늘어난다. 육체적 강도가 높은 ‘헤비 노동’, 한랭 작업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도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씨가 대기실에서 주로 숙식하면서 빨리 출근하더라도 오전 5시에 동료들과 함께 청소차를 타고 나간 점 등을 근거로 유족측의 근무시간을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부담 요인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24시간 이내 돌발적인 사건과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장기간 흡연·음주 이력도 고려사항이 됐다.

하지만 이달 3일 나온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근무지 변경으로 인한 ‘과로’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담당구역이 변경됨에 따라 새벽기상이 요구됐는데 실제로 망인은 새벽 출근에 어려움이 있어 평일 대기실에서 숙식하는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 인해 이미 상당히 피로가 누적돼 있어 공단이 산정한 근무시간에 따르더라도 과중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12주 동안 주당 평균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질병 관련성이 높아진다는 노동부 고시 규정을 제시했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로 업무부담 가중요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유족 “근로시간 개편시 아버지 죽음 되풀이”
전문가 “은폐 노동시간 많아, 국제·법정기준 지켜야”

정씨가 숨진 지 7년여 만에 산재가 인정됐다. 그러나 그사이 가족의 일상은 무너졌다. 정씨 아내는 남편의 사망 충격으로 불면증과 우울증이 생겨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허리디스크와 관절염 질환으로 일할 수도 없었다. 유족연금 60만원으로 생활하기는 벅차 아들이 필수생활비 정도를 보태고 있다고 한다. 정씨 딸은 “아버지가 가장의 무게와 책임을 지고 우직하게 일했는데 과로에 몰린 사실을 알고 가족이 모두 슬픔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 방침도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씨 딸은 “아버지는 ‘과로’로 돌아가셨다. 말 그대로 높은 업무강도와 긴 근무시간으로 사망에 이른 것”이라며 “근로시간 유연화 방침은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눠야 할 업무를 한 번에 몰게 되면 노동자들이 압박받는다. 오히려 노동시간이 고정돼야 워라밸을 보장받으며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같은 사례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정부 방침은 반드시 재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씨 사망 당시는 주 최대 68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주말 각 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었던 시절이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도입된 것은 2018년 3월 근로기준법이 개정되고 같은해 7월부터다. 정부가 근로시간 ‘상한 캡’을 씌우더라도 연장근로시간이 늘어나면 정씨 같은 과로사는 얼마든지 증가할 수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환경미화원 정씨 사례처럼 숨겨지고 은폐된 시간이 많아 이미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라며 “유럽연합(EU)이 정한 법정근로시간은 48시간이다. 궁극적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씨 유족을 대리한 오빛나라 변호사는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요한 문제”라며 “노동시간을 기업과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법정근로시간을 엄격히 해석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지도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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