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민의힘은 주 69시간 근무제가 가짜뉴스라고 한다. 왜 가짜뉴스를 살포했나? 69시간제 장관님이 말씀하신 것 아닌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문을 던지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언론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며 “선택근로제도 극단적인 경우 129시간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129시간제가 되는 것이 아니잖나”라고 답했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주 69시간제’로 부르려면, 현행 제도는 주 129시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하소연도 정부·여당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 129시간과 주 69시간을 비교하는 게 타당하다는 이들의 주장은 맞는 걸까. 23일 <매일노동뉴스>가 살펴봤다.

예외 규정일 뿐인 선택근로제

이 장관의 말처럼 현행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에서 주 129시간 연장근로가 가능하다. 선택근로제 탓이다. 선택근로제는 1개월 이내 또는 최대 3개월 동안 총 근로시간 범위 내에서 출퇴근 시간과 하루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제도다.

1개월 이상 선택근로제 시행시 근로일간 11시간의 휴게시간 부여가 의무이지만, 1개월 미만은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 6일 근무 가정시 최대 129시간(21.5시간×6일) 노동이 가능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4시간마다 30분씩 휴게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에 하루 최대 21.5시간 일할 수 있다. 잠도 안 자고 일만 한다는 가정에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 규정이다. 정부는 2018년 7월 주 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한 뒤 예외 규정인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확대했다. 종전에는 휴일을 근로일에 포함하지 않아 주 68시간 노동이 가능했는데,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후 급격히 기업 부담이 늘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동부 설명처럼 ‘주 52시간 현장 안착을 위한 보완입법’적 성격이다.

선택근로제도의 적합 직무는 “근로일에 따라 업무량 편차가 발생해 업무조율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 디자인 등”이다.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의 경우 1개월 이내인 정산 기간을 최대 3개월 이내로 확대할 수 있다.

“현행은 주 40시간이 원칙”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원칙은 일 8시간, 주 40시간이다. 근로기준법 50조 1~2항은 휴게시간을 제외한 1일, 1주 근로시간을 8시간, 40시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노동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기존 주 52시간 상한제를 허문다. 20여년 만에 주 68시간이 가능했던 근로시간제도를 주 52시간제로 겨우 돌려놨는데, 주 69시간 노동이 가능하도록 뒷걸음질 치려는 것이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건강권 보호 강화, 휴식권 보장, 유연화 근무 확산이라는 정부 정책 (취지)에는 공감 한다”며 “다만 1일1주 단위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원칙을 변경해서 유연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1일1주 단위 근로시간 제한이 경직적인 건 인정하지만, 근로시간 유연화제도 활성화 등 예외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아닌, 원칙 자체를 변경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관해서는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몰아치기 노동 위험 눈감은 정부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주 평균 48.5시간으로 단축하는 안이라고 강조한다. 근로시간 단축, 즉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란 설명이다. 정부계획에 따르면 노사가 합의해 1년 단위로 연장근로 총량을 관리하면 기존 연 연장 근로시간의 70% 수준인 440시간만 가능하다.

그런데 집중 근무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침해 대책은 담기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주 최대 55시간 넘게 일하면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은 17%, 뇌졸중으로 숨질 위험은 35% 높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은 뇌심혈관질환 산업재해를 대폭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라고 예상했다.

분명한 것은 2021년 3월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의 주요내용'에서 밝히고 있듯이 주 52시간 상한제는 "우리 사회 오랜 관행인 장시간 근로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됐고, 이 제도 시행 후 2017년 2천18시간이던 연간 근로시간은 지난해 1천915시간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또 주 52시간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는 노동자가 아닌 재계의 오랜 요구라는 것이다. 한국경총은 최근 ‘정부 입법예고안에 대한 팩트체크’ 자료에서 “현실적으로 주문량 증가, 업무량 폭증 등 업무집중이 필요한 경우에 현행 주 12시간 연장근로 제도 운영으로는 업무를 해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므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