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1년 우리나라의 연간근로시간은 1천915시간이었다. OECD 평균은 1천716시간이었고, 유럽연합(EU) 27개국 평균은 1천566시간이었다.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할 때, 한국 노동자들은 OECD 평균보다 25일을 더 일했고, EU 평균보다 44일 더 일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연간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1천349시간)이다. 한국 노동자는 독일 노동자보다 한해 71일을 더 일했다. 한국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의 모범 사례로 드는 덴마크(1천363시간)와 네덜란드(1천417시간)에 견줘도 한국 노동자는 각각 69일과 63일 더 일했다.

‘과로사’라는 말의 원산지 나라인 일본(1천607시간)과 비교해도 한해 39일을 더 일한다. 미국(1천791시간)보다 16일, 영국(1천497시간)보다 53일, 심지어 튀르키예(1천572시간)보다 43일 더 일했다.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연간근로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2천128시간), 코스타리카(2천73시간), 콜롬비아(1천964시간), 칠레(1천915시간) 4개국 뿐이었다.

‘주 최대 근로시간’으로 고용노동부는 69시간을 밀어붙이고, 일본을 다녀온 대통령은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69시간에서 하루치 근로시간인 9시간을 줄여 주 최대 근로시간을 60시간으로 낮추면, 괜찮을 것일까. 물론 답은 그렇지 않다.

2021년 5월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는 주 최대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을 경우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공동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세계적 수준에서 장시간 근무가 심장질환과 뇌졸중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최초의 연구 결과다.

주 55시간 이상 일하면 심장질환과 뇌졸중으로 인한 사망이 크게 늘어난다. 장시간 근로 때문에 2016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74만5천명이 뇌졸중과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한다. 2000년 이후 29%나 늘어난 수치다.

WHO와 ILO는 최소 주 55시간 이상 일한 사람들 중에서 2016년 한 해 동안 39만8천명이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34만7천명이 심장질환 때문에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60~79세에 죽었는데, 이들은 45~74세일 때 주 55시간 이상 일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과로로 인한 사망은 노동자가 재직 중에도 발생하지만, 상당수 과로사는 노동자가 은퇴한 후 발생하면서 조기 사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구를 위해 수집된 각종 증거를 종합할 때, 주 55시간 이상 근무자는 주 35~40시간 근무자와 비교할 때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위험성은 17% 높았고, 뇌졸중으로 숨질 위험성은 35% 높았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장시간 근로로 인한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자는 42% 증가했고, 같은 기간 장시간 근로로 인한 뇌졸중 사망자는 19% 늘었다. 세계 인구의 9%인 4억7천900만명이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은 일로 인해 장애를 갖거나 일찍 죽게 될 위험이 크다고 WHO와 ILO는 경고했다.

일과 관련된 전체 질병 가운데 3분의 1이 장시간 근무 때문으로 추정되며, 장시간 근로가 직업병 최대의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WHO는 “주 55시간 이상 근로가 건강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요인”이라면서 “모든 나라의 정부·사용자·노동자는 장시간 근무가 조기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장시간 근로로 인한 조기 사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HO는 △정부가 의무적인 연장근로를 금지하고 근로시간의 상한선을 규제하는 법규와 정책을 도입·집행하고 △사용자단체와 노동자단체는 근로시간의 최대치를 제한하는 동시에 근로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조정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일하는 시간을 나눠 주 55시간 이상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5월 나온 WHO와 ILO의 공동 보고서는 76만8천명을 대상으로 한 허혈성 심장질환 관련 연구 37건과 83만9천명을 대상으로 한 뇌졸중 관련 연구 22건을 종합한 것으로 1970~2018년 154개국에서 수집된 2천300개 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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