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근로시간 개편’이 화두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입법예고 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진화에 나섰다. 현행 ‘주 52시간’과 ‘주 60시간’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몰아치기 노동’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과로’를 넘어 노동시간이 한꺼번에 몰리는 ‘폭로(暴勞)’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시간 노동, 특히 집중근무로 과로해 숨지거나 쓰러진 노동자들과 유족을 연속으로 심층 인터뷰한다. ‘몰아서 일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짚는다. 과로사 통계를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핀다.<편집자>

정도익(가명)씨는 서른여섯 살의 평범한 사무직 직원이었다. 2019년 급성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회복지사였던 정씨는 2016년 6월 경기 성남시의 한 사회복지관에 입사했다. 그런데 2년9개월 뒤인 2019년 3월29일 새벽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그날 숨을 거뒀다. 그는 사고 직전 아내에게 “일하느라 점심을 걸렀어. 물도 못 마실 정도로 바빠”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매일노동뉴스>는 9일 정씨 아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생전 정씨의 삶을 들여다봤다.

“요즘 심장이 빨리 뛴다” 수면 중 심정지

지난달 29일 정씨 아내는 남편 4주기를 맞았다. 정씨가 떠난 이후 아내 홀로 여덟 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아내는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아이와 방에서 자고 있는데 새벽 5시께 거실에서 자던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평소와 달라 나갔더니 ‘억, 억’ 소리와 함께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어요.” 급히 119를 불렀지만, 남편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딸은 응급처치 소리에 깨서 아빠를 목격했다. 그날 모습을 기억한 딸은 분리불안 증세로 열 달 정도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직 아빠의 부재를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아내도 수면유도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씨 아내는 “힘들다고 호소한 남편을 세심하게 살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조증상’은 사고 며칠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씨는 평소 심혈관질환을 앓은 적이 없었다. 정씨 아내는 “남편은 아이가 아프면 눈물을 보일 정도로 ‘딸 바보’였다”며 “가족을 끔찍이 생각해 동료와의 술자리를 빠질 정도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만성과로로 건강검진시 간 수치가 평균 이상으로 나타나 특히 건강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료들에게 “요즘 심장이 빨리 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심근경색 환자의 75%가 겪는 가슴 두근거림 증상이었다.

부장 승진 후 출장에 영업, 급여는 그대로

이 무렵은 ‘승진’ 직후였다. 정씨는 복지관 운영지원부에서 서무업무 전반을 수행하다가 2019년 3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복지관은 성남 최대 규모로 2016년 5월 개관 이후 2년여 만에 이용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개관 멤버’로 입사한 정씨가 담당했던 시설·민원관리 등의 업무량은 급증한 이용자수만큼 늘었다.

특히 부장이 된 직후 일이 쏟아졌다. 성남시에서 복지관을 위탁받은 사단법인의 업무를 추가로 수행하게 된 것이다. 정씨는 법인이 만든 대외협력위원회의 복지관 대표를 맡았다. 법인이 추진하는 사업의 계획서 작성과 기획·홍보·후원개발 등 각종 업무가 부여됐다.

출장과 외근도 잦아졌다. 법인 업무가 추가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대외협력위 회의 참석차 출장을 갔다. 기존에는 없었던 법인 고위직 상사들과의 교류가 많아졌다. 또 법인의 행사 티켓을 판매하기 위해 ‘을’이 돼 영업을 뛰어야 했다고 한다. 정씨 아내는 “남편은 승진 이후에도 급여는 오르지 않았다”며 “책임감과 의무만 부과됐던 것”이라고 토로했다.

차량엔 라면 부스러기
“늦은 시간 잠자는 가족에 미안해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간과의 싸움’ 연속이었다. 정씨 아내는 “성남시에서 보고를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 남편은 하루 이틀 사이에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역사회의 이벤트와 관장 일정 관리도 비공식적으로 수행했다”고 기억했다. 늘 시간에 쫓긴 셈이다. 정씨는 10분 만에 점심을 먹고 바로 일하는 날이 잦았다고 한다. 게다가 야근이 있는 날이면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계속 근무했다.

식사시간은 불규칙했다. 밤 10~11시가 돼서야 퇴근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루는 정씨 차량에 ‘라면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아내가 발견했다. 아내가 잔소리하자 정씨는 “배고픈데 집에 너무 늦게 와서 먹으면 잠을 방해할까 봐 운전하면서 끼니를 때웠다”고 하소연했다. 아내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던 남편이 왜 그렇게 먹어야 했는지 당시 상황이 원망스럽다”며 울먹였다.

퇴근 이후에도 업무는 계속됐다. 정씨는 시설관리 업무도 담당하다 보니 당직 근무자 출입과 주차시설 개방 문제 등으로 보안업체 담당자와 자주 통화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퇴근한 뒤에도 직접 복지관에 나가야 했다. 정씨 아내는 “사고 전 마지막 주말에도 남편은 딸과 단둘이 공연을 보던 중 당직자 연락을 받고 출근했다”며 “일요일 저녁에는 주간회의자료 준비와 밀린 행정업무를 처리했다. 남편은 새벽에 잠들곤 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직자’가 없어 연차수당이 지급되지 않는데도 매년 3~5일의 연차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주 4일 40시간 근무’ 새벽까지 잔업

결국 정씨는 사고 당일 오후 9시에 퇴근해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정씨의 주평균 근로시간을 △사망 전 1주간 50시간10분 △4주간 43시간27분 △12주간 42시간43분으로 계산했다. 사업주 진술과 출퇴근 카드를 근거로 삼았다. 오전 8시30분께 출근해 오후 6~9시에 퇴근했다고 봤다. 점심시간 1시간과 저녁시간 30분은 업무시간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급성심근경색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공단이 산정한 시간은 고용노동부 고시의 ‘뇌심혈관 질병의 업무 관련성 인정기준’인 12주간 1주 평균 60시간 근무와 1주 평균 4주간 64시간 근무에 미치지 못한다. 공단은 급격한 업무량 증가나 돌발적인 상황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소송을 이어갔다. 정씨 아내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1~2월은 복지관의 비수기에 해당하고 설 연휴도 있어 실제 근무시간이 적게 측정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씨 사망 전 2~3주, 7주 전에는 4일간 근로시간이 40시간에 달했다. 매일 10시간가량 근무한 셈이다. 퇴근 후 재택근무도 잦았기에 복지관 전자결재시스템 로그인 기록도 요구했다. 하지만 정씨 아내는 “법인측은 세 차례나 문서제출명령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차례의 변론 끝에 지난해 2월 재판부의 조정권고로 결론 내려졌다.

아내 “주 69시간, 양육 어떻게 하나”

남편 사고 3년여 만에 산재가 인정됐지만, 아내의 삶은 멈췄다. 정씨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는 아내는 “남편은 고교 때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아 봉사동아리를 만들 정도로 사명감이 남달랐다.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사회복지 대학원을 졸업해 약 8년10개월간 사회복지 관련 기관에 종사했다.

남편 사망 이후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고 한다. 정씨 아내는 “예전에는 상황이 생기면 주말에도 출근하는 등 초과근무를 했는데 남편 사고를 겪고 나니 (일이)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루 8시간 정도만 일하면서 주말에는 최대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주말도 자녀를 돌보다 보면 제대로 쉬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직장인은 육아로 인해 주말에도 피로가 누적됩니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동료 눈치를 보며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누구를 위한 근로기준법인지 정부에 묻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