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 자료사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의 문턱에서 당장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전환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까. 노사 간 교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자조적인 시각도 있지만 양대 노총과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단체협약 요구안과 실천적 지침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올해 단체교섭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기후위기 대응방안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 기후위기대응특위 구성
한국노총은 임단투 지침 준비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지난달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공공운수노조·건설산업연맹·금속노조·기후위기대응서울모임·기후위기비상행동·민주노동연구원·사회공공연구원 관계자가 참여한다.

대응특위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조합원 인식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후정의 실현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모범 단협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도 시작하는 단계다. 아울러 노동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원포인트 단협 요구안’도 개발하고 있다. 예컨대 기후정의에 부합하는 식단을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도록 하거나 한 달에 한 번 자전거로 통근하는 날을 정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요구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공동임금·단체협상 투쟁지침에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과 노조의 대응’이라는 제목의 장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공동임단투 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설문조사에서 탈탄소 정책에 따른 산업전환이 회원조합 사업장에 미칠 영향과 노사의 준비 수준을 파악했다.

이상윤 한국노총 정책2본부 차장은 “기후위기에 따른 산업전환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산에 대한 노조의 대응이 올해 핵심 쟁점 중 하나”라며 “단위노조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단협 요구안의 구체적인 예를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 눈앞 석탄화력발전·자동차부품 업계는

석탄화력발전처럼 산업전환에 따라 고용위기가 초래되고 있는 업계에서는 노조가 사측에 요구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송민 한국남부발전노조 위원장은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하는 한전산업개발은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아예 회사가 없어질 수 있다”며 “정부가 해결할 문제지 노사 간 교섭에서 논의할 게 그다지 없다”고 말했다. 김성관 한국동서발전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전남 여수 호남화력발전소 1·2호기가 폐쇄되면서 사측과 특별교섭을 진행했다”며 “지금까지는 인력을 흡수할 여력이 되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발전 5사 노조는 대정부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조 통합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발전 5사 통합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올해 9월 통합을 목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계에서도 노동계가 앞장서서 탄소 배출량 감축을 요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교섭의제로 삼을 생각은 없다.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데다 어차피 정부 정책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렸다. 이성희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산업전환으로 위기에 처한 자동차부품사들의 실질적인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그런 부분을 중심으로 단체교섭 요구안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금속노련도 자동차부품 업종을 중심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연맹 산하 노조 3분의 1가량이 자동차부품 업종에 속한다. 연맹은 자동차부품업종위원회를 통해 현장 의견을 수렴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나 탄소중립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자동차부품 업종도 사업장마다 기후위기에 대한 온도차는 다르다. 전기차에도 많이 사용되는 전장부품 업체는 산업전환의 수혜를 받을 수도 있다. 사업장별로 상이한 이해관계를 반영한 요구안을 마련하는 것도 숙제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기후정의위원회’ 설치 요구, 산별협약 체결

산업과 사업장이 처한 상황에 따라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 수준은 차이가 크다. 공공운수노조는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해 올해 임단투 10대 요구안에 ‘기후정의위원회’ 설치 관련 조항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후정의위원회는 △탈탄소 산업전환을 위한 교육 △온실가스 배출 감축 계획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업 전환·투자·조달 계획 △노동자 피해 대책을 노사가 공동으로 수립하기 위한 기구다. 노조는 공공서비스 이용자와 환경·기후·에너지 분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외부 위원의 참여도 요구할 방침이다. 노조 관계자는 “산하 사업장에서 업종에 따라 기후위기와 관련한 핵심이슈가 다르다”며 “어떤 공통된 요구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노동자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절차적 장치를 요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와 산별노조 최초로 ‘산업전환협약’을 맺고 “회사의 지속 가능한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위한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노조는 당시 공동요구안으로 산업전환에 따른 미래협약 체결을 추진해 노조 현대차지부·기아차지부가 각각 교섭에서 별도 미래협약을 체결했다.

보건의료산업 노사는 지난해 11월 산별중앙교섭에 조인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 노력을 약속했다. 노사는 연 1회 이상 기후위기 대응 교육을 시행하고 캠페인 활동을 함께 전개하기로 했다. 저탄소 의료기관 실현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 마련, 전 직원이 함께 실천하는 기후위기 대응 실천수칙 등 세부 방안을 사업장별로 마련할 계획이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임단협 요구안과 관련해 전국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며 “올해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 계획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훈·김미영 기자

 

‘기후위기 단체교섭’ 이렇게 준비하세요
영국노총 가이드라인, 사측 목표·계획 확인하고 작더라도 성과 쌓아야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문제를 단체교섭에서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국노총(TUC) 홈페이지(tuc.org.uk/climate)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이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노총은 교섭 준비와 관련해 기후위기 이슈에 관심이 있는 직원을 협상팀에 넣으라고 제안한다. 안전과 건강 담당자를 협상팀에 포함하면 사측에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협상팀을 구성한 뒤에는 정보를 수집할 차례다. 사측이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했는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목표와 일정을 설정했는지, 사업장에 적용되는 정부의 목표가 무엇이고 사측이 이를 달성할 계획이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에서 가장 큰 기후변화 문제가 무엇인지 협상팀 내부에서 논의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교섭 테이블에서는 사측에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조와 협력할 것을 요구하라고 제안한다.

영국노총은 작은 성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작은 성과로는 △공개 성명 발표 △기후비상사태 선언 △전환배치 △‘탄소 발자국’ 줄이기 △기후위기 교육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탄소 감축 목표 달성과 일자리 보호를 약속하는 내용의 공개 성명,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가 존재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 계획을 수립한다는 내용의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할 것을 사측에 요구하라고 주문한다.

석탄화력발전처럼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에서는 구조조정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영국노총은 산업전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직원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거나 다른 업무에 배치하라는 요구안을 제시하라고 권고한다. ‘탄소 발자국’ 줄이기 방안으로는 작업장에 대한 환경감사 수행, 재택근무와 원격회의 확대, 일회용 플라스틱 줄이기, 작업장에 나무와 야생화 심기, 구내식당 내 지역 농산물 사용 같은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 영국노총은 사업장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교육 실시 요구를 빠뜨리지 말라고 덧붙였다.

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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