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남부발전 홈페이지

지난달 23일 오후 1시께 하동석탄화력발전소 2부두는 하역작업이 한창이었다. 하동화력에는 부두가 세 개 있다. 부두 하나는 석회석을 내려 쌓는 곳이다. 석회석은 석탄을 태운 뒤 남은 재(ash)를 처리할 때 쓴다.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석탄을 내리는 부두는 1·2부두다. 15만~20만톤 규모의 운반선이 보름마다 배를 댄다. 석탄을 내리는 일은 항운노동자가 한다. SVC 하역기를 활용해 수입한 탄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린다. 이 탄은 곧장 6개 저탄장으로 옮기는데, 이 과정의 컨베이어벨트를 관리·감독하는 일은 한전산업개발 노동자들이 한다. 컨베이어벨트는 하역장에서부터 저탄장, 그리고 8개 보일러로 연결돼 있다. 이를 구간별로 잘라 2인1조로 관리한다.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씨의 죽음은 이 컨베이어벨트 공정에서 발생했다. 김용균씨 사망 이후 펜스를 설치하는 등 안전설비를 늘렸지만 현장은 여전히 위험하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탄을 직접 수거해 올리기도 합니다.” 박용표 한전산업개발노조 남부지부 하동지회 위원장의 설명이다. “컨베이어벨트 전 구간을 17명이 관리하고 있고, 이 가운데 일부는 제어실에서 모니터로 컨베이어벨트의 운송 상황을 확인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석탄 하역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일단 접안시간이 정해져 있다. 하역이 지연돼 접안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지면 하동화력의 주인인 한국남동발전이 선박회사쪽에 접안지연료를 물어 준다. 접안시간이 길어진 만큼 운송에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기한을 맞추려 내달린다. 석탄은 성질에 따라 운반 난도가 다르다. 만약 양이 많고 난도가 높으면 노동강도는 세진다.

옮긴 탄은 저탄소에 비축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탄이 섞이지 않도록 한다. 컨베이어벨트가 자동으로 탄을 옮겨 섞이는 일은 거의 없긴 하다.

열효율 비율 맞춰 석탄 배합하고
연소 뒤 재처리하는 일에 390명

종류에 따라 탄을 모아 두는 이유는 서로 열효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탄소에 쌓아 둔 탄은 하동발전소의 연소기술센터의 요청에 따라 배합해 보일러로 옮긴다. “각 보일러의 출력과 열효율을 고려해 연소기술센터가 필요한 탄의 정류와 배합비율을 정해 주면 제어실 기기운전자가 배합기로 들어가는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조절해 비율을 맞춥니다. 두 종류의 탄을 6 대 4로 배합한다면 한쪽의 속도를 20% 올리고, 다른 쪽 속도를 같은 수치만큼 낮추는 방식으로 배합합니다.” 배합한 탄은 발전 보일러의 급탄기로 옮긴다.

업무가 이게 끝은 아니다. 타고 남은 재의 처리도 한전산업개발이 한다. 연소한 탄의 폐기물 가운데 80%는 굴뚝을 통해 배출되고 20%는 재처리장으로 옮겨진다. 굴뚝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포집해 다시 무해하게 바꾸는 일을 탈황이라고 하는데, 이 일을 한전산업개발이 도맡아 한다.

재처리장으로 간 폐기물도 석회를 섞는 방식으로 유해요소를 없애고, 일부는 시멘트나 석고보드에 쓰는 재활용재로 만들어 배출한다. 발전공정을 제외한 석탄화력의 모든 공정을 한전산업개발이 하는 셈이다.

하동화력 2027년부터 LNG 전환
한전산업개발 3천개 일자리 ‘소멸’

그렇지만 6년 뒤, 이 일을 하는 노동자는 하동발전소에 더 이상 남을 수 없다. 하동화력은 정부의 9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2026년 1호기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천연가스(LNG)복합발전소로 전환한다. 하동화력에서 일하는 한전산업개발 노동자 390명은 당장 갈 곳이 없다.

“우리도 원래는 한국전력공사 직원이었어요.” 박용표 위원장의 설명이다. 한전산업개발은 1990년 4월 한전 100% 출자 공기업으로 출범했다. 그러다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으로 2003년 한국자유총연맹이 지분 51%를 인수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올해 6월 기준 3천115명이다. 이미 보령·삼천포 같은 곳의 화력발전 노동자 300여명이 자리를 잃었다. 일부는 인근 다른 석탄화력발전소로 자리를 옮겼지만 두 자릿수 해고자가 생겼다. 이들에게 기후위기에 산업전환 고용위기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노동자들은 한전 자회사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박용표 위원장은 “회사 자체가 사라질 상황에서 정부는 재생에너지 일자리 8만개를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우리가 갈 수 있는 자리는 어디냐”며 “부서 하나라도 좋으니 들어가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고 토로했다.

산업전환으로 이렇게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발전 비정규직은 전국적으로 1만1천286명이나 된다. 올해 3월 기준이다. 한전산업개발 같은 민간회사를 포함해 발전5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자회사로 고용한 환경·경비·시설 노동자를 포함한 수다. 발전 노동자에게 고용단절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닥친 일이다.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

터빈수 감소 따라 정규직도 감축
청년노동자들 “미래 설계 어떻게”

발전 5사 정규직이라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석탄화력발전과 LNG발전은 언뜻 연료만 바뀌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발전방식 자체가 다르다. 석탄화력발전이 석탄을 때 발생한 증기로 터빈을 돌리고, 이 터빈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라면 LNG발전은 LNG를 태운 화력으로 바로 터빈을 돌린다. 2개의 터빈이 1개로 줄어든다. 당연히 투입되는 노동자수도 준다.

이 때문에 특히 발전 정규직 가운데 청년 노동자들의 고민이 깊다. 공기업이라 안정적이라는 기대를 품고 입사했는데 정년은커녕 조만간 일자리를 잃거나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10년째 하동화력에서 일하는 이아무개(28)씨는 “미래를 설계할 수 없어 막막한 기분”이라며 “남들은 안정적인 공기업, 그것도 한전에 다니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현실과 동떨어져 반박하기도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12년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곧장 하동화력에 취업했다. 취업 이듬해 군대를 다녀오고 4년제 대학까지 졸업했다. 삼천포부터 하동까지 오가는 먼 거리를 출퇴근하기 위해 차도 샀다. 20대를 고스란히 하동화력에 바친 셈이지만, 사업장은 그의 미래를 외면했다.

이씨는 “보일러부에서 설비감독을 하고 군 전역 뒤에는 품질관리부에서 일했다”며 “LNG발전소로 전환해도 품질관리부는 유지하겠지만 하동에 계속 남을 수 있을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될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결혼도 하고 싶지만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섣불리 결정할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정년을 장담할 수 없어 앞으로 민영발전소로 이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걱정도 한다. 처우가 후퇴할 가능성도 크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민간발전소 이직도 쉽지 않을 거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10년 경력이라 민영발전소 이직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 상태로 더 나이가 든다면 민영발전소에서 장년 경력 노동자를 채용할 이유가 없을 테니 갈 곳이 없어진다”고 전했다.

하동 정규직 666명 중 최대 266명 감원
전국 확대하면 5천538명이 고용단절

발전업계에서는 석탄화력발전에서 LNG발전으로 전환하면 현재 일자리의 30%, 많게는 40%가 소멸할 걸로 내다본다. 송민 한국남부발전노조 위원장은 “발전 비정규직이나 자회사 노동자에 비해 전환을 위한 재교육이 유리할 수는 있어도 지금 고용량을 모두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송 위원장은 “발전공정 자체가 간소화하기 때문에 발전소의 꽃으로 불리는 발전운전 노동자를 비롯해 다수의 중견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나마도 재교육이 어떤 내용인지, 언제부터 이뤄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고 위기에 처한 발전사 정규직이 하동화력으로 따지면 666명 가운데 200~266명이다. 전체 화력발전 정규직 1만3천846명으로 확대해 단순 계산하면 향후 30년간 4천153~5천538명이 발전소를 떠나야 한다. 발전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쪽도 터빈 같은 발전설비 축소와 변화에 따라 인력 감소가 예상된다.

전후방 고용으로 따지면 고용위기 규모는 더 커진다. 석탄을 운송하는 해운업의 고용감소와 각 발전소 인근에서 석탄하역에 투입되는 노동량의 감소도 예상해야 한다. 김성진 항운노련 쟁의1국장은 “하역회사의 일자리 특성상 상시적인 고용보다 일용직 형태의 근로가 많고, 특히 발전사는 대규모 항만이 아니라 자체 하역장을 운용하고 있어 지역일자리 고용이 많아 (고용위기 노동자) 숫자를 특정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산업전환 정책에서도 사각지대로 놓여 보상이나 재교육도 어렵고 만약 석탄화력운송을 중단했을 때 연고를 이전할 가능성도 크지 않아 고용상실이 불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선 고용 후 교육”
정규직 “출혈경쟁 발전사 통합하자”

노동자들이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전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을 통한 고용안정과 ‘선 고용 후 재교육’을 요구하고 있다. 이태성 발전비정규노조 대표자회의 간사는 “2018년 이후 지지부진한 정규직 전환 논의로 위기가 가중됐다”며 “정부는 재교육을 이야기하는데 재교육에 앞서 고용을 보장하고 재교육에 나서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발전 정규직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허용해 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발전5사가 재생에너지 개발에 직접 참여해 회사를 존속시켜 달라는 요구다. 송민 위원장은 “전력구조개편에 따라 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5개 발전사를 쪼갠 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출혈경쟁만 하고 있다”며 “5사를 통합해 재생에너지 생산을 담당할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화력석탄발전에서 LNG발전으로 전환하는 과정의 고용승계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지난 8월 발전5사 노동자들과 만난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지금의 위기를 말하는 노동자들에게 “탄소중립 시나리오 3개 가운데 어떤 것을 지지하는지 밝히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송 위원장은 “재생에너지의 안전성 문제, 노동자의 산업전환과 고용단절의 공포 같은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며 “수십년간 한국산업발전의 첨병으로, 국민에게 공공재인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는 자부심을 지키도록 제발 대화에 임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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