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세계 기후위기 대응과 맞물리면서 내연기관차에서 미래차로 전환이 빨라지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줄이려면 그때까지 전체 차량 2천700만대 중 전기차·수소차·하이브리드차 비율을 3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지난 11월 기준 전기차 누적판매량은 22만6천대로, 2030년 목표량 362만대까지 갈 길이 멀다. 향후 9년 동안 전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완성차·부품사의 고용충격 관련 논의는 큰 진전이 없다. 불안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 되고 있다. 완성차 비정규직과 부품사 노동자뿐 아니라 완성차 정규직까지 ‘오징어게임’을 하는 형국이다.

2일 <매일노동뉴스>가 미래차 전환과정에서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충을 듣고,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살폈다.

내연기관차 부품노동자 “시한부 인생 마찬가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거죠.”

내연기관 엔진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김정현(가명)씨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과거 5년 동안의 변화보다 최근 1~2년 동안의 변화가 더 빠른 것 같다”며 “디젤·가솔린 엔진이 덜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미 나온 엔진의 업그레이드 사양을 개발할 뿐 신규 사양의 엔진은 개발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전기·수소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 그 수준은 미미하다. 회사 총 매출 기준으로 25분의1 수준인 데다 생산에 투입되는 인원은 10명뿐이라고 한다. 생산공정도 일부만 담당한다. 미래차 부품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현재 내연기관차의 주력 생산부품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따라 김씨를 포함한 동료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이다.

한정수(가명)씨는 내연기관차 배관시스템에 필요한 부품을 생산한다. 그는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량을 30% 줄인다면 9년 뒤에는 팔 수 있는 제품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며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망해 가는 사업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품사 구조조정은 이미 진행 중이다. 한씨는 “2015년 이전에는 사람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 관계없이 채용을 했는데, 이후 내연기관 확장성이 정점에 도달해 퇴사·퇴직 대비 채용 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곳 사업장 노동자의 평균연령은 50세다.

회사는 전기차 배터리에 필요한 부품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 양산단계는 아니다. 양산에 성공해도 내연기관차 부품을 생산하는 노동자가 미래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한씨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장수(가명)씨는 “회사는 지금 있는 현장에 (생산)라인을 깔아 원청에 납품하게 되면, 직원 근속이 높아 가격 경쟁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다”며 “지금 있는 사원들의 고용을 지켜 주겠다고 말은 하는데 조직되지 않은 생산 현장은 최저시급으로 운영되니,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완성차·부품사 갈등 번질 조짐도”

완성차 공장도 폭풍전야다. 고용안정과 직결되는 물량, 자동화 이슈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지난해 4월에는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사내하청 노동자)가 울산 3공장에 생산라인 부품을 자동 공급하는 ‘원키트 시스템’ 도입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정규직 노사가 고용유지를 담은 확약서를 추진하면서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고용보장 확약에 비정규직도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해 9월에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물량을 전주공장에 나눠 주는 문제를 두고 지부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했다.

윤상섭 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은 “4차 산업혁명도 좋고, 산업 발전도 다 좋은데 결국은 사람이 먼저 아니냐”며 “왜 항상 발전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먼저 해고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고용안정’은 노조 현대자동차지부를 이끌 새로운 집행부를 뽑는 선거에서도 단연 주요 화두였다. 이달 1일 임기를 시작한 안현호 지부장은 선거공약으로 “외주화, 자동화 물량이관 등 고용불안 요소를 척결하고, 미래산업 전환에 따른 파워트레인 사업부 고용대책 마련”을 내세웠다. 배터리와 PE모듈 등 친환경차 핵심부품도 사내에서 조립하겠다는 공약도 더했다.

지부의 공약은 계열사에서 생산 중인 부품을 내재화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현대차 직원은 내연기관차 엔진·변속기를 직접 생산했지만, 전기차의 경우 주요 파워트레인 부품을 현대모비스·현대트랜시스 등 계열사가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 계열 부품사 상황은 비계열 부품사보다 상황이 낫긴 하지만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친환경 부품 생산해도…
언제 중단될지 몰라”

다행히 산업전환에 성공한 부품사라도 ‘완성차사-부품계열사·부품사-하청’라는 다단계 하청구조 속에서 종속성은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전국 13곳에 공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중 현대모비스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창원·울산·진천뿐이다. 나머지 10곳은 현대모비스와 생산전문협력사(사내하청사)가 함께 운영한다. 충주공장은 협력사 그린이노텍과 동우FC가 각각 1·2공장에서 친환경차 부품을 생산하는데 원청의 계약해지나 물량 축소로 언제든 고용불안에 노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진규 현대모비스 충주노조 사무국장은 “친환경차나 거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는 내연기관차 부품을 생하는 이들보다 정도가 덜할 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진행 중인데다, 불량률도 높은 터라 우리 물량을 이원화·삼원화해 생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현대차는 현대모비스 안에서 어떻게든 부품을 생산하려 했지만 최근 1차 하청사가 아닌 NVH코리아·경창산업 등 생산전문회사에도 친환경 부품을 맡기고 있다”며 “경쟁을 시키려는 원청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모비스 충주노조 조합원 450여명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미래차 시장 경쟁력과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을 동일시하는 기조 아래 추진되는 전환정책은 ‘완성차사-부품사’의 수직계열화 구조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배가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0년 10월 ‘미래자동차 확산 및 시장선점 전략’을 공개했는데, 2030년까지 부품기업 1천개를 미래차 기업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때 완성차는 전기·수소차 핵심부품 정보를 1·2차 협력사와 공유해 사업재편 희망기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부품사의 미래가 완성차 손에 달린 셈이다.

김영일 금속노조 현대위아비정규직지회장은 “안산·광주·창원공장도 내연기관 모듈을 생산해 전기차로 전환되면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직영 직원들은 사업부가 정리돼도 다른 사업부에 발령받아 일할 수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산자부 정책자금 늘리지만,
노동자 고용충격 대책은 안 보여”

산자부는 미래자동차 확산을 위해 각종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전기·수소차 개발, 자율주행 핵심기술 고도화 등을 위해서 지난해 대비 32.5% 증가한 3천610억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편성했다. 산자부는 2일에도 “2022년까지 224억원을 집중 지원해 2천233명의 전문인력을 양성한다”고 밝혔다. 학부생과 석·박사 등 중·고급 인력을 포함해 재직자·실직자들도 교육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전환에 실패한 부품사 생산직 노동자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유림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정부가 부품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각종 R&D 자금을 지원하고 인력·기술개발 등을 지원하는데 문제는 수직계열화의 종속성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라며 “부품사들 중 기존 어느 정도 업력이나 자금력이 있었던 곳이 그나마 정부 전환계획에 올라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국장은 “실제로 산업전환에 대응하기 어려운 정말 영세하거나 내연기관 외에는 다른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업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지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은 “(산업)전환이 국내 부품사들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역 내 정책협의체를 활성화해 회사가 산업전환을 위한 투자계획이 있는지, 여력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전환하지 못하는 회사는 사회안전망·교육과 연계해 직업이동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자가 전환 주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지고 있지만 실행은 늦다. 노동자를 포함한 사회 다양한 계층이 산업전환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법안’(강은미 정의당 의원안)도 지난달 겨우 발의됐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사내하청 외주화모델 확장 우려”
“분배중심 투쟁, 비전투쟁으로 전환해야”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부품업체 관계자를 만나며 보게 된 문제는 (부품사가) 미래차 부품을 만드는 쪽 고용은 정규직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라며 “새로 시작하는 것에 불확실성과 비용부담을 느끼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사내하청의 외주화모델’이 미래차 영역으로 고스란히 확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연구위원은 “독일 같은 경우 기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직무교육을 시켜서 기존 숙련을 활용하고 새로운 숙련을 개발하는 전략을 펴는데 우리는 자동화에 대한 환상이 있고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유림 정책국장은 “정부는 자동차 산업·시장이 확대되고 수출이 유지되는 것을 기조로 업체가 살아나고, 고용도 유지된다고 보는데 자동차산업 전망은 앞으로가 더욱 어둡다”며 “수출도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지역 혹은 국가 안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형태인 지역가치사슬(RVC)로 바뀌면서 부품사 수출이 더 어려워지고 완성차사도 국외 생산, 현지 대응을 많이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정책국장은 “별도의 부품사 노동자들 고용유지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대응도 변화가 요구된다. 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슈페이퍼 ‘자동차산업의 미래차 전환과 부품산업의 대응 과제’를 통해 “전통적인 분배투쟁 중심의 작업장 노사관계를 비전투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당장 조합원의 임금을 올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으나 미래차 시대를 맞아 중장기적으로 조합원과 후배 세대 일자리를 어떻게 확보하고 지킬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해법을 도출해 내지 못하면 기존 조직노동은 끊임없이 축소되고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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