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왔다. 대설을 하루 앞둔 이른 아침.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왼편으로는 노동권익센터가, 오른편으로는 충남도청이 눈에 들어온다. 도청 너머 펼쳐진 용봉산과 수암산의 능선에도 희끗한 눈의 흔적들이 자리한다.눈이 내려온다. 공원을 가로질러 빠른 걸음으로 5분. 어깨에, 외투와 머리칼에 닿아 오는 굵은 눈송이가 출근길 산란한 마음을 다독이는 듯도 했다.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선 골목에서, 크레인에 올라 건물 외벽 유리창을 정비하는 노동자들을 마주한다. 5분 남짓 짧은 출근길, 순진한 낭만에서 이내 깨어난다. 이른 아침, 시린
축구도, 야구도, 인생도, 투쟁도 그렇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열린다.회사도 마찬가지다. 주식회사 청산의 첫 단계는 주주총회의 해산결의다(상법 517조). 청산절차 진행 중, 주주들은 언제든 ‘회사의 계속’ 결의를 할 수 있다(상법 519조). 주주들로 하여금 스스로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계속 결의를 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러면 회사는 완벽히 부활한다.한국와이퍼라는 회사가 있다. 매출 규모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부품 회사인 일본 덴소(DENSO)의 한국 내 자회사다. 덴소는 올해 기준 세계 35개 국가와 지역에서 총 198
1. “정유·철강 등 운송 차질이 발생한 업종에 대해서 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를 마쳤다.”4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주재 대책회의를 통해서 이렇게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파업에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 시멘트 업종에 더해 정유·철강 등으로 확대 발동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근로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파업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이렇게 주장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봐 불법파업으로 규정짓겠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 이런 매일
나는 노동 문제가 풀리지 않는 데에 정치 부재도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의 미덕은 서로 다른 입장, 다양한 이익과 열정을 가진 이들의 갈등을 제도화하고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처리해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는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조정해 해결에 다가서기보다 지지자나 관련 단체와 결속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정당과 정치인이 시민을 더 거칠게 만들고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이 정당한 대응일 수 있다는 신호를 사회 곳곳에 보낸다.화물연대의 단체행동에 대한
얼마 전 맡은 사건에서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미교부에 대해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했다. 진정인은 무려 23년 동안 작은 빌딩의 관리자로 혼자 근무했다.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그 오랜 기간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사회보험도 가입되지 않았다. 진정인은 입주자들이 출근하기 전인 8시에 출근해서 엘리베이터 전원을 켜고 계단과 옥상, 건물 주변을 청소했다. 좁은 골목에 건물이 있던 터라 행인들이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는 일이 많아 이를 감시하는 것도 진정인의 역할이었다. 사무실이나 휴게실도 없어서 엘리베이터 하부 피트에 진정인이 직접 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2월2일 오후 7시를 기점으로 ‘10.29 이태원 참사’ 관련 중대본의 운영을 종료했다.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업무를 ‘원스톱 통합지원센터’와 ‘이태원 참사 행안부 지원단’을 통해 수행하겠다고 하면서 그 이외에 범정부적 차원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수시 관계 장관회의를 개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로부터 나흘 전인 지난달 28일. 정부는 중대본 브리핑을 통해 “물류체계 마비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에 해당한다” “국가핵심기반 마비는 코로나19, 이태원
엥겔스가 자신의 명저 에서 제기한 철학의 근본문제가 있다. 물질(material)이 먼저냐 영혼(spirit)이 먼저냐. 유물론이라 불리는 물질론은 물질이 먼저이며 영혼을 물질 운동의 과정이자 결과로 본다. 물질이 사라지면 영혼도 사라진다. 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며 마음의 작동 방식을 결정한다. 물질인 몸이 존재해야 마음도 존재한다. 그 역은 성립될 수 없다.관념론으로 불리는 영혼론은 영혼이 먼저이며 물질을 영혼 운동의 과정과 결과로 본다. 마음이 사라지면 몸도 사라진다.
지난달 21일자 여러 신문 사람면에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올해의 CEO’로 뽑혔다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매일경제는 29면에 ‘최정우 회장, 글로벌메탈어워즈 올해의 CEO’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는 같은날 23면에 ‘최정우 회장, 미주·유럽 아성 넘어 올해의 철강사 CEO’라는 제목으로 각각 보도했다.‘글로벌 메탈 어워즈’라는 이름이 생소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가 운영하는 철강 분야 정보 분석기관 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츠가 주관해 주는 상이다. 해마다 17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는데 관련 업계의 그렇고 그런 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의 무리한 요구로 노동자가 정신적 고통에 처할 위기에 있는 경우 사업주는 고객과 노동자를 분리조치하는 등 고객의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가 수차례 고객에게 폭언당해 사업주에게 대응을 요구했는데도 사업주가 제대로 된 노동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담 사례가 있었다.나는 해당 업체 사업주에게 법에 따라 폭언을 한 고객으로부터 고객 응대 노동자를 분리조치하고 유급휴가 등을 부여해 정신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게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사업주는 당당하게 자신은 “감정노동자
“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한 말이다. 2003년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대응으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에 도입된 업무개시명령제는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해 화물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줘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에게 업무개시를 명할
최근 한 근로자복지센터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요청한 강의 주제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노란봉투법은 어떤 내용인지, 지금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하필 노란봉투인지를 궁금해했다.우리 헌법은 33조에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 3권을 보장한다. 그중 파업으로 대표되는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에게 사용자에 대해 노동을 제공하지 않을 무기를 부여한다. 일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에게 노동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에게 맞선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생존을 건 투쟁이다. 우리 법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수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 일.” 심리학용어사전은 수치심을 “다른 사람이 자신을 결점이 있는 사람으로 바라본다고 판단할 때 발생하는 정서”라고 말한다. ‘자신의 결점이 외부에 노출됐을 때 느끼는 정서’이며, ‘자신의 자아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의해 유발되는 정서’라고 설명한다.‘수치심’이란 감정은 이제껏 성폭력의 법적 판단 기준에 중요한 요소로 다뤄져 왔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이나 아동복지법 등의 법률
이야기 하나, 내가 디딘 마룻바닥주 40시간을 넘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주 35시간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마룻바닥을 시공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3시간과 주 70~80시간의 중노동에 노출돼 있다. 당연히 건설현장에도 주 최대 52시간 상한선이 존재하지만, 마루노동자들은 3.3% 사업소득세를 공제하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근로시간 제한과는 무관하게, 새벽별 보며 출근해서 해가 진 다음에야 퇴근한다. 마루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정일씨는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일씨가 10살 때 아버지는 가게에 불이나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그 이듬해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중학생때는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졸업 후에는 동사무소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대학시절에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스배달, 이삿짐 배달, 공사장 잡역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실한 중견기업에 취업해 회계관리 업무를 익혔고, 경영지원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안락한 가정을 이뤘다. 50세가 된 정일씨는 비로소 평온한 일상을 맞이했다.어느 날
김종수 열사의 평전이 동지가 분신항거로 산화한 지 33년 만인 지난 4월 출간했다. 책 제목은 다. 노동운동가 겸 작가 안재성 씨가 글을 썼다. 지난 18일 출판기념회가 있었다.지금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 가운데 김종수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늦게나마 이렇게 평전이 출간돼 후세대 노동자들이 그를 좀 더 잘 알게 된 데 다행으로 생각한다. 평전이 나올 수 있도록 애써 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해 5월1일 노동절 투쟁이 있고 난 며칠 후 김종수 동지는 몸담고 있던 민주노조 ㈜서광 구로지부를 사수하는
비하로 이끈 경제라인10월 중순, 몇몇 언론이 조용한 퇴사에 대해 보도했다. 임금을 받는 만큼만 일하다 조용히 떠나는 젊은 직장인과 그에 대응해 사용자도 조용한 해고를 선택한다고 했다. 애착이 없으니 근면 성실할 이유가 없고 적당히 일하다 조용히 그만두는 것이 당연한 세태일까. 11월, 미국의 트위터와 아마존에서 해고가 시작됐다. 이 뉴스는 떠들썩하게 전 세계에 퍼졌다.경부선을 타면 부산, 호남선을 타면 광주, 영동선을 타면 동해안에 이르듯 노동도 어떤 길을 달리는가에 따라 도착지가 달랐다. 노동이 가장 먼저 내달리는 곳은 경제라인
미국의 우파 신문의 중심에 우뚝 선 워싱턴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의 자서전은 이름부터 ‘워싱턴포스트와 나의 80년’이다. 중앙일보가 1997년 번역해 한국판도 냈다.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미국 현대 신문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부유한 금수저로 태어난 우파 신문의 여성 발행인이 시카고 대학 시절 좌파 이념에 빠져 거리를 뛰어다녔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습기자로 첫발을 내디디며 파업 현장 노동자와 젊음을 불태웠다는 얘기는 덤이다.그는 경영난에 빠진 워싱턴포스트를 어린 나이에 인수했던 아버지 유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2월 대통령 후보 때 TV토론을 통해 누가 당선되든 연금개혁에 나서자는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후 인수위원장직을 맡으며 지난 4월18일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대통합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달 29일 구조적 연금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연금개혁특위가 첫 전체회의를 열어 논의를 시작했다.지금까지 정치적 부담으로 논의조차 꺼내지 못했던 공적연금 개혁에 있어서 정부의 의지는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지난 19대 대통령선
‘노동조합’. 국어사전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과 없는 사업장의 차이는 크다. 안전관리 역시 노동조합 유무에 따라 극적으로 바뀐 사례가 있다.울산의 자동차 외장 부품공장 이야기다. 해당 사업장은 2018년에 노동조합이 들어섰다. 노동조합이 들어서기 전 해당 사업장은 10시간 맞교대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10시간이지, 실제론 12시간에 가깝게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주야 맞교대제는 과로나 직업병 유발 위험
공공운수노조가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 올해 파업은 여로모로 쟁점적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 탓에 국민 정서가 예민하다. 파업이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반감이 이전보다 클 수도 있다. 낮은 지지율로 곤란을 겪는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어떨지도 관심사다. 통상 보수정부는 ‘노조 때리기’로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나는 공공운수노조가 파업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인정받으려면, 첫째 요구로 내건 공공성 확대와 민영화 저지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공공성 개념부터 살펴보자. 공공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