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올해 2월 대통령 후보 때 TV토론을 통해 누가 당선되든 연금개혁에 나서자는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이후 인수위원장직을 맡으며 지난 4월18일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대통합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고 같은달 29일 구조적 연금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연금개혁특위가 첫 전체회의를 열어 논의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정치적 부담으로 논의조차 꺼내지 못했던 공적연금 개혁에 있어서 정부의 의지는 명확해 보인다. 하지만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시기 모든 후보가 동의했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경험한 바 있다. 정부의 ‘선언’으로 ‘당위’가 앞설 때 실제 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고 취임 직후 2년간 16.4%, 10.9%를 인상했다가 여론의 역풍이 일자 이후 2년은 2.85%, 1.5%로 인상률을 추락시켰다. 마지막 해에는 5.1%로 소폭 인상했으나 결과적으로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통령이 사과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그 결과 최저임금이 9천160원인 올해 여전히 ‘최저임금 인상’ 담론과 ‘최저임금 차등적용’ 담론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만을 야기하고 있다.

19대 대통령선거 당시에도 모든 후보가 최저임금 1만원에 합의했고 모든 후보의 공약에 실리는 등 높은 수준의 정치적 합의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왜 문재인 정부는 이런 식의 갈지자 행보를 이어 갔을까. 그 원인은 ‘사회적 합의’라는 국정운영 모델에 대한 몰이해와 리더십 문제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또는 교섭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최저임금위에서는 노측 또는 사측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서는 일이 반복됐고, 결과적으로 공익위원들의 결정이 곧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 됐다. 결론을 정해 두고 진행되는 ‘사회적 대화’는 사회의 갈등비용을 낮추기는커녕 더욱 키우기만 했다. 그리고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여야 했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물이어야 했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 주체들 간의 의견을 중재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했어야 하나 합의나 논의보다는 여론에 따라 달라지는 태도로 임했다. 그렇기에 문재인 정부가 본인들의 당위를 관철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를 동원했다는 비판은 적절하고, 리더십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은 최저임금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해구조가 둘러싸고 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개혁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는 하루 이틀 사이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특히 인구구조 변화와 연금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지금 미래 노령인구 부양을 위해 재정을 지탱해야 할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연금 무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복지정책의 가장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금정책을 시민들이 다시 신뢰할 수 있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연금개혁특위를 설치해 논의했으나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차기 정부로 과제를 떠넘기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공적연금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연금의 재정악화가 예견되기에 모수개혁을 통해 보험료율을 인상해 재정안정성을 확보하고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기초연금 강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는 한 편, 이미 보험료율은 높으며 국가복지 재정의 지출을 확대해 소득대체율을 높여 공적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다만 문재인 정부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당위의 관철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의 동원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 또한 연금개혁에 대해 단일한 목소리를 낼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연금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논의들 가운데에서 타협하고 조율하는 정치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 정부와 같이 최저임금을 정부가 여론에 따라 결정했던 것처럼 공적연금 개혁 또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거나 계속해서 과제를 미루게 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연금개혁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갈등을 조율하고 통합할 수 있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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