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한국전력공사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이긴 하청노동자에게 소송 포기를 전제로 자회사 전적을 강요하는 일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청노동자들은 법원에서 한전의 불법파견을 인정받고도 고용이 불안한 지위에 놓였는데 이는 하청노동자들의 고용승계 기대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송 포기하고 자회사 가거나 일자리 잃거나

공공운수노조는 29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은 도서 발전노동자에 대한 해고 협박과 소송 포기 강요·자회사 전환을 즉각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은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함께 주최했다.

한전은 지난 23일 30년 가까이 도서전력 위탁운영사업을 수의계약한 JBC에 공문을 보냈다. 다음달 1일부터 자회사인 한전MCS에 해당 사업을 넘길 테니 인수·인계에 협조하라는 내용이다.

사정은 이렇다. 한전은 지난해 JBC 소속 노동자 145명이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하자 민간상생협의회를 꾸려 이들의 고용전환에 대해 논의했다. 항소심을 제기한 한전은 협의회를 네 차례 연 끝에 불법파견 소송에서 이긴 JBC 노동자들에게 2심 소송을 취하하고 자회사인 한전MCS로 전적할 것을 통보했다. 이후 한전은 JBC에 도서전력 위탁운영 사업의 계약종료를 통보했고 다음달 1일 한전MCS와 새로운 용역계약 체결을 앞둔 상태다.

JBC 노동자들에겐 소송을 포기한 채 자회사를 가거나 일자리를 잃는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600여명의 JBC 노동자 중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는 145명으로 이들 중 대부분이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지부장 이재동) 소속이다.

지부는 지난 25일 광주지법을 상대로 소 취하를 조건으로 하는 자회사 고용절차 등을 중단하라는 가처분신청서를 제출했다. 30일에는 전북 나주 한전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 계획이다. 문제는 한전이 당장 다음달 1일부터 한전MCS와의 계약을 체결하는 등 자회사 전적에 속도를 내고 있어 노동자들의 거취 문제도 조만간 결정될 수밖에 없다. 발전노조 관계자는 “다음달 말께 JBC가 자회사 전적에 동의하지 않은 노동자에 해고를 통보하리라 본다”고 밝혔다.

“한전, 파견법과 법원 명령 잠탈”

소 포기와 자회사 전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진행될 경우 서해 5도 등 주요 도서 전력공급 차질 우려도 제기된다. 조합원들이 울릉도나 연평도·백령도 등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전략적 요충지이자 남북한 접경지인 서해 5도 전력생산에 당장 공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재동 지부장은 “수십 년간의 불법파견과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한전이 직접고용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자회사 전환으로 또다시 도서발전소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며 “연평도 포격사건 때 조합원들이 섬을 지키며 복구작업과 전력공급을 했는데 이제와서 한전이 사용자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 매우 분하다”고 밝혔다.

한전의 자회사 전환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함과 동시에 잠탈하는 행위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전이 법원의 명령을 교묘히 어기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광주지법은 한전이 파견법을 위반한 점을 인정하고 일부를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원고는 고용의 의사를 표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한전은 이들을 직접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를 동원해 소송포기각서를 받으려 한다. 자회사 전환은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접고용을 시도하는 한전의 행위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는 잠탈적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규수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최근 법원은 원청 사업주의 파견법 잠탈 시도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금지되는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며 “한전의 자회사 전환은 그 자체로 파견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변호사는 “한전의 행위는 도서 발전노동자의 재판청구권 행사를 방해하고 근로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법상 강요에도 해당할 수 있다”며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회사 전환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은 도서 발전노동자의 고용승계 기대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지부 관계자는 “한전에서 당장 소 포기에 대한 내용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계속해서 한전과 대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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