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남동구 간석동 인천교통공사 본사 전경. <인천교통공사 홈페이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근로조건을 변경하지 않은 채 임금만 삭감하는 이른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2022년 5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강행규정인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이후 법리가 굳어지는 모양새다. 법원은 임금 삭감에 대한 조치가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사 ‘근로시간 단축’ 지자체 권고 미이행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인천제2민사부(재판장 김유진 부장판사)는 인천교통공사 퇴직자 A씨 등 22명이 공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소송에서 지난 18일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심 판결이 확정되면 공사는 청구액 약 3억5천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소송 발단은 인천교통공사가 2015년 9월 노조와 합의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비롯됐다. 공사는 만 60세의 기존 정년을 유지하되 정년을 3년 앞둔 직원들의 임금을 깎도록 임금피크제를 설계했다. 이에 따라 2017년 이후 57세는 7%, 58세는 12%, 59세는 20%씩 보수가 감액됐다. 공사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퇴직연금을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고, 공로연수제도를 마련했다.

그러자 A씨 등은 임금과 퇴직금 3억5천여만원을 적게 받았다며 2020년 9월 소송을 냈다. 이들은 “현행 고령자고용법은 나이만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어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고령자고용법(4조의4 1항)에 따르면 임금·복리후생·교육·배치·퇴직 등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특히 A씨 등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임금만 감액돼 고령직원의 고용안정에 기여한 점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인천시장은 2018년 12월 ‘임금피크제 제도 운영 변경사항’을 통해 임금피크제 대상 노동자의 근로시간 단축을 권고했으나, 공사가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피크제 기준’ 대법 판결 두고 엇갈린 판단

쟁점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시행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였다. 소송 제기 이후인 2022년 5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임금피크제 사건’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판도가 흔들렸다.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노동자들이 입는 불이익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처음 제시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공사가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하고, 퇴직 1년 전 대상자에게 공로연수를 받을 기회를 제공했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6개월 또는 1년간 근로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급여를 그대로 받으면서 퇴직 후 사회적응에 도움이 되는 연수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가 있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2심은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임금피크제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으로서 강행규정인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개별적인 업무성과와 관계없이 일정한 연령에 이르렀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깎였다고 봤다.

2심 “대상조치 부족” 추가 소송 줄이어

특히 ‘정년유지형’은 ‘정년연장형’보다 근로조건의 불이익 정도가 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근로시간이 단축되거나 목표 수준이 낮게 설정되는 등 근로내용에 변동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임금피크제는 고령자의 고용불안 해소라는 목적에는 별로 기여한 바가 없고, 오직 연령을 이유로 일률적인 임금 감액의 불이익만 가했다”고 지적했다. 또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다른 지방공기업과 비교해도 보수 삭감 정도가 작지 않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공사가 도입한 △퇴직금 중간정산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전환 △공로연수도 충분한 대상 조치가 아니라고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공로연수제도는 임금 삭감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마지막 1년 내지 6개월에 집중되는데, 공로연수 시기가 도래하기 직전에 퇴직하는 경우 공로연수를 받지 못해 삭감된 임금에 대한 보전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조 대표자의 동의를 얻었더라도, 피고가 임금피크제로 인해 원고들이 입게 될 불이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후속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퇴직자들의 소송이 1심에서 진행되고 있고, 지난해 퇴직자들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안증섭 통합인천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이날 <매일노동뉴스>에 “소송 제기 이후 임금피크제 개선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공로연수 제도는 이미 다른 지방공기업은 모두 시행하고 있어 이를 충분한 대상 조치라고 볼 수 없는데, 2심에서 인정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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