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신용정보 홈페이지 갈무리
A&D신용정보 홈페이지 갈무리

임금 총액을 기준으로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기계적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 임금피크 삭감률이 70%까지 치솟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데, 정년연장으로 임금을 계속 받게 됐으니 노동자에게 이익이라는 판단이다.

한마디로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아도 정년연장에 만족하며 일하라는 뜻이다. 노동의 대가로서 임금의 적정성을 따지지 않고 총액 증감만 판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년 일해 2년치 임금도 못 받는데…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재판장 김정민)는 지난달 26일 A&D신용정보(에이앤디신용정보) 임금 소송에서 원고인 사무금융노조 A&D신용정보지부(지부장 고태홍) 조합원 10명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A&D신용정보는 2016년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조치였다. 임금피크 5년간 지급률은 190%에 불과했다. 5년 일해 2년치 임금도 못 받는다는 것이다. 임금피크 4~5년차(59~60세) 땐 임금의 70%까지 삭감해 최저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법원 “70% 삭감률 과하지만
정년연장으로 총액 늘어 이익”

재판부의 일관된 기준은 임금 총액이다. 노동자가 은퇴할 때까지 받을 수 있는 임금의 총량을 기준으로 노동자의 유불리를 따졌다. 재판부는 절차적 위법성 쟁점에서 이 사건 임금피크제를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로 규정하고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적용 5년간 종전에 받을 수 없던 연봉을 받을 기회를 얻었고, 임금피크제 시행 전보다 임금 총액 측면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됐다”고 판시했다. 이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정년연장의 측면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크임금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받는 점에만 초점을 맞춰 원고들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삭감률이 과도하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정년연장이 법률 개정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기대했더라도 원고들에게 유리한 정년연장의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임금 감액만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불이익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임금삭감률의 정도가 다소 높긴 하다”면서도 사측이 격려금·성과급을 지급한 점을 언급하며 “격려금·성과급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다시 이행청구할 수 있다”고 했다. 사측이 대상조치를 중단하면 다시 소를 제기하라는 취지다.

‘노동의 대가’ 지워진 판결

노동을 고려하지 않는 판결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원고측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정년이 연장된 기간동안 제공하는 노동은 평가하지 않고, 임금 액수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임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불이익 변경임을 전제로 판단하는 대법원 판례하고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격려금·성과급 지급과 관련 고태홍 지부장은 “소 제기 후 뒤늦게 지급한 것”이라며 “성과급 제도로 임금피크제를 보완하려고 했다면 취업규칙 변경할 때 함께 도입했어야 했다. 규칙에 없는 성과급은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사건은 사측이 임금피크제를 구조조정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심이 불거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사측은 희망퇴직자에게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고 계약직으로 재고용도 하고 있다. 고 지부장은 “130명이었던 정규직이 100명 가까이 줄었다. 사측이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증거 부족으로 이러한 주장을 기각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