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이 지난 5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50명(억) 미만 적용유예 연장에 반대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50명 미만 기업의 절반 가까이는 안전보건담당자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 2년간 정부의 컨설팅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사업장은 10곳 중 8곳이나 됐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50명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기간 연장을 주장하면서 안전보건담당자 채용 지원과 컨설팅 확대를 계획으로 내놓았는데, 정부대책이 뒤늦은 데다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조사결과다.

45% “안전보건담당자 없어”
노동부 고용지원 대상은 0.06%

한국경총은 10일 50명 미만 사업장(건설공사 50억원 미만 사업장) 1천53개를 대상으로 지난달 14~22일 팩스와 이메일을 통해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준비가 완료된 기업은 6%에 불과했다. 이들 중 87%는 법이 적용되는 내년 1월27일 전까지 준비완료가 어렵다고 답했다.

주목되는 것은 법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다.

소규모 사업장은 업무수행자가 부족해 전문인력 지원을 요구했다. 응답 기업 45%가 안전보건업무 수행자가 없었다. 담당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 57%는 사업주나 현장소장이 관련업무를 수행했다. 안전보건 담당자가 있다는 응답은 28%였다. 법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 전문 인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선택지에 가장 많은 기업이(41%) 답했고, 필요한 지원으로 전문 인력 지원(32%)을 꼽았다.

이는 노동부가 내놓은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노동부는 준비 안 된 소규모 사업장들에 안전관리 인력을 고용하면 지원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전문인력 고용시 보조금으로 2년간 월 15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총 200억원을 편성했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수혜자가 적어서다. 예산을 따져보면 지원 대상 사업장은 555곳에 그친다. 우리나라 50명 미만 사업장은 83만 곳이다. 0.1%에도 못 미치는 0.06%만 대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모든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지원책을 펼치려면 29조8천800억원이 필요하다. 정부가 같은 액수로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가정할 때다.

정부 컨설팅, 지금처럼 하면 3년 넘게 걸려

정부 컨설팅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사결과 응답기업의 82%는 노동부나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소규모 사업장 법적용을 위해 정부의 지원 등 준비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노동부는 안전보건공단·민간재해예방기관과 협업해 2022~2023년 45만개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교육 및 기술지도를 집중 지원했다는 입장이다.

노동부는 법을 2년간 유예하면 소규모 사업장에 컨설팅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모든 기업에 컨설팅과 교육, 기술지도를 지원할 예정이다. 법시행을 눈앞에 두고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 역시 실효성 논란이 있다. 모든 사업장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위험사업장만 놓고 보면 2022~2023년 8만개소 중 컨설팅은 1만7천개소에 실시됐는데, 같은 속도로 모든 사업장에 컨설팅을 실시하려면 3년이 넘게 걸린다. 건설현장의 경우 공사 기간도 짧고, 수개월마다 새롭게 생기는 현장이기 때문에 컨설팅 사업의 완료는 불가능하다.

중기중앙회 “안전보건관리체계 이행까지 6개월 이상”
노동계 “2년간 준비 안 했다는 증거, 3개월이면 충분”

소규모 사업장은 필요한 지원으로 ‘현장 특성에 적합한 매뉴얼과 가이드 보급’(33%)을 첫번째로 꼽았다. 준비가 어려운 의무사항으로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 수행평가 기준 마련’(29%),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절차(위험성평가) 마련’(27%)을 지목했다. 매뉴얼을 마련해 달라는 게 소규모 사업장 의견이다.

다만 이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의 이유로 드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박이 나온다. 노동계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는 시간이 많이 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3개월이면 가능하다. 한국노총이 2021년부터 올해까지 3회에 거쳐 실시한 산재예방 지원사업 분석 결과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이에 재반박을 하며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30일~이달 6일 올해 노동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에 참여한 50명 미만 사업장 7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참여 효과에 관한 실태조사’를 지난 7일 발표했다. 컨설팅 이후에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까지 ‘6개월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56.0%)는 내용이다. 조사에 따르면 60.0%가 법에 따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노총은 8일 성명을 내고 “컨설팅 이후 안전보건체계 구축 이행까지 6개월~1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통계는 법 제정 이후 3년의 적용유예 기간 동안 충분히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체계 구축이 가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적용유예 연장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준비부족과 비용을 이유로 유예를 주장하는 것은 안전보건체계 구축 의지가 없음을 피력하는 것”이라며 “정부도 내용 없는 지원대책을 가지고 빈축만 사지 말고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즉시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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