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사진 왼쪽)와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사진 가운데), 김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열린 ‘산재한 산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소희 기자>

고용노동부는 최근 “산재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를 예고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산재 추정의 원칙 등이 산재 ‘부정수급자’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하면서 이른바 ‘산재 카르텔’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하지만 산재 당사자와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선해야 할 산재 문제는 따로 있다”고 입을 모은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용균씨의 5주기를 맞아 지난 2일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는 ‘산재(散在)한 산재(産災)’라는 주제로 이야기 마당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산재 당사자 혹은 산재자를 지원하고 치료하는 일을 맡은 이들이다.

“산재 입증책임 사업주가 져야”

첫 번째 이야기 주자로 나선 이는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삼성반도체 부천공장 포토공정에서 3년 동안 일하고 전신 홍반성 루푸스라는 희귀 난치성 질환을 앓게 된 업무상 질병 피해자 박원희씨였다. 김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사회를 맡아 질문을 던졌다.

박씨는 퇴사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산재 신청을 하게 됐다. 루푸스로 인해 대상포진이 발병하고 죽음의 문턱에 두 번 넘기게 되면서 친언니가 옛 일터에 도움을 청해보자는 게 시작이었다. 삼성측은 “퇴사한지 너무 오래 지나 산재가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함께 산재 승인까지 함께했다.

산재를 인정받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산재 유족인 김미숙 이사장도 “갑자기 유족이 되어 무슨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산재 원인과 과정을 밝혀가야 하는 것이 매우 부당하게 느껴졌다”며 “모든 증거를 회사가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람이 나서서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독일은 산재 처리 과정에서 투입되는 산재 전문의사(D-Arzt)가 피재자의 요양 절차를 결정하고 산재보상기관에 산재 보고서를 제출한다. 독일은 산재 신고 의무가 사업주에게 있어 산재의사는 요양절차 등을 명시해 산재 보고서를 내고, 사업주도 산재보상기관과 노동관서에 산재 신고를 하게 돼 있다. 산재 처리와 관련해 산재 의사의 보고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재 은폐가 생겨날 틈이 적다.

박원희씨는 산재 승인 이후에도 요양급여를 받는 과정이 힘들었다고 증언했다. 박씨는 “휴업급여도 제가 신청해야 하고, 산재 승인이 되면 알아서 처리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질병이나 사고의 원인을 사업주가 책임지고 밝히도록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미숙 이사장 역시 “산재가 아니라면 기업이 스스로 입증하고 산재 관련 조사를 게을리하는 공무원을 처벌할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재 카르텔 책임, 복잡한·허술한 제도 방조한 정부에”

지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열린 ‘산재한 산재’ 참가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산업재해 정의를 적은 피켓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소희 기자>
지난 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대안예술공간 이포에서 열린 ‘산재한 산재’ 참가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산업재해 정의를 적은 피켓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소희 기자>

두 번째 이야기 주자로 나선 산업안전보건 전문가들은 “산재 카르텔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는 “산재 카르텔은 20조원씩 쌓여있는 산재보험기금을 제대로 쓰지 않는 정부와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재가 덜 발생한 기업에 대해 산재 보험료를 할인해 준 금액은 지난해 7천500억원에 달했다. 최 대표는 “재계와 국민의힘이 문제 삼는 추정의 원칙은 통계의 결과”라며 “99% 승인이 나는 근골격계 질환을 중심으로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 행정력을 줄이겠다는 게 제도 취지인데 이 때문에 부정수급자가 생긴다는 건 무지와 억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산재는 제도 자체가 너무 어려운 게 문제”라며 “재계의 억지로 추정의 원칙에 대한 매뉴얼이 또 생기고 더 복잡해질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인 박승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재계가 문제 삼는 근골격계질환 추정의 원칙은 현장에서 폭넓게 적용되지 않고 통계로는 전체 산재 승인의 3%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산재 카르텔은 실제로 있다”며 “질병산재는 증명이 매우 어렵고 의사에게 소견서 받는 것도 쉽지 않아 산재 브로커가 활개치는 상황이 바로 산재 카르텔인데 이 상황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문제 삼은 ‘나이롱 환자’는 산재 환자에게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또 “요양 종결 시점은 사람마다 차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일할 수 있는 시점이 요양 종결 시점인데 현재는 조금만 움직임이 가능해도 직장 복귀를 말한다”며 “회복 기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문제인데 산재의 실체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자리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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