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일부 업종·직종에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 업종·직종은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안전보건 전문가와 해당 업종 노동자들이 정부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편집자>

▲ 장향미(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 장향미(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나는 IT업계에서 15년 넘게 일하고 있다. 역시 이 업계에서 일하다 과로와 직장내 괴롭힘으로 목숨을 잃은 동생의 언니다. IT업계는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다. 주요 원인으로는 크런치모드와 포괄임금제 남용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사업주 입장에서 비용 절감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게임회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를 판매·운영해 수익을 창출한다. 컴퓨터는 작업도구일 뿐 실제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기획자,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QA 테스터와 같은 사람들이다. 생산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결국 인건비다.

인건비를 절감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IT업계는 포괄임금제를 관행적으로 남용해 왔다. 포괄임금제는 근로형태나 업무성질상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휴일·야간·연장 근로 등이 당연히 예정된 경우에, 계산의 편의를 위한 노사 간 약정으로 추가 근로시간을 미리 정해서 매월 일정액의 제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이다. 원래는 기자, 외근 영업직, 프리랜서와 같이 회사의 관리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근무하는 빈도가 높아 근태관리가 어려운 직종에 적용한다. 하지만 현실은 사무직·연구개발직 등과 같이 고정 사무실에서 회사의 근태관리가 충분히 가능한 업무에,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 악용하는 꼼수로 활용되고 있다.

일개 직원이 회사를 상대로 매번 약정한 연장근로시간보다 초과근무한 시간을 계산해 야근수당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회사는 추가근무수당을 주지 않고도 필요한 만큼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고 그만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2018년 대형 IT기업에 노조가 설립한 뒤 일부 대형 IT회사와 게임회사에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면서 점차 장시간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주 52시간인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계획을 발표하면서, “포괄임금제는 유지하되, ‘포괄임금제를 이용한 임금체불’을 뿌리 뽑겠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크런치모드는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작업형태다. 포괄임금제와 함께 IT업계에 만연한 문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크런치모드는 “소프트웨어 개발 마감 시한을 맞추기 위해 수면, 영양 섭취, 위생, 기타 사회활동 등을 포기하고 연장근무하는 것”이다. 게임 론칭이나 중요한 업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경우, 일부 크런치모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거기에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 이 제한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이다.

게다가 크런치모드는 점차 시도 때도 없이 시행되는 상시적인 작업형태로 굳어지고 있다. 게임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넘어가면서 게임 유행 주기는 이전보다 짧아지고 개발기간 역시 더욱 짧아졌다. 급변하는 시장환경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업체들이 인력이나 작업일정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크런치모드를 실행해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 넣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후진적인 운영방식을 취하고 있다. 2016년 넷마블에서 발생한 과로사의 배경에는 크런치모드가 있었다.

이미 게임업계 사업주들이 주 52시간 상한제에 날 선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생산성이 중요한데,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게임업계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취지였다. 고용노동부의 이번 발표는 이 같은 재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셈이다. IT산업의 특성상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 속에는 산업만 있고 사람은 빠져 있다. IT업계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이 과로사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은 다수의 국내외 연구를 통해서 이미 밝혀졌다. 또 실제 발생사례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노동부와 재계는 그저 못 들은 척, 못 본 척 외면할 뿐이다.

일부 업종과 직종에서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노동부 방침은 노동시간을 점차 줄여 나가는 국제적인 추세에 역행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개선 노력을 정면으로 뒤집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장시간 노동 환경으로의 회귀를 적극 권장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정말 옳은 방향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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