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 포괄임금 약정에서 별도로 산정한 연차수당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산정한 금액보다 적은 경우에만 한정해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연차휴가미사용수당도 포괄임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기존 판례 태도에 갇혀 협소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심 “연차수당 포함 포괄임금은 무효”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인천시 소재 건설회사 소속 노동자 A씨 등 4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형틀목공·철근·콘크리트 타설공사를 담당하다가 퇴직한 노동자들이 연차휴가수당을 받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근로계약은 ‘포괄임금’ 형태로, 연차수당을 전체 급여의 2.5%로 산정했다. 문제는 근로계약상 연차수당이 실제 발생한 연차수당보다 적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미지급 수당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2017년 3월 소송을 냈다. 이와 별개로 당시 회사 대표는 2017년 6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쟁점은 ‘연차휴가미사용수당도 포괄임금에 포함할 수 있는지’였다. 1·2심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먼저 포괄임금제가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연차휴가미사용수당까지 포함된 포괄임금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용하지 않은 휴가에 대한 보상금까지 포함된 포괄임금제가 유효하다고 보는 경우 근로자의 연차휴가권을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며 “사용자가 사전약정으로 근로자가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거나 연차휴가일에도 근로할 것을 정하고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것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이 정한 연차휴가권의 행사를 저지하고 근로를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돼 그 유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연차휴가수당을 포괄임금 약정에 포함시킬 경우 이미 연차휴가수당을 지급받아 사실상 연차를 쓸 수 없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포괄임금제 연차휴가권 박탈 아냐”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사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원심이 연차수당까지 월급에 포함해 지급하기로 하는 포괄임금 약정을 설립했다고 볼 것이라면, 월급에 포함돼 지급된 연차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된 정당한 연차수당액에 미달한 부분에 한해 포괄임금 약정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해 무효라고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 연차수당을 포함해 포괄임금 약정을 무효로 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사자 사이에 미리 연차수당을 임금에 포함해 지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고, 포괄임금제는 수당 지급방법에 관한 것으로서 연차휴가권 행사 여부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포괄임금제가 연차휴가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1998년 3월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법조계는 대법원이 포괄임금제를 좁게 해석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우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회 위원장)는 “재가요양보호사 등 실제 근로계약 체결시 연차휴가미사용수당까지 포괄임금으로 책정해 실제로 연차를 쓸 수 없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기존 대법원 입장에서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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