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일부 업종·직종에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 업종·직종은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안전보건 전문가와 해당 업종 노동자들이 정부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편집자>

김정열(한화오션 노동자)
▲ 김정열(한화오션 노동자)

한국은 장시간 노동의 나라다. 과로사 원조국인 일본보다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거꾸로 업종별로 노동시간을 더욱 유연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절대적인 시간을 늘리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주 최대 노동시간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규제의 단위기간을 분기나 반기로 늘린다는 것은 지금도 회사의 필요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조선업 노동자들에게는 과로사를 부추기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십 수년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기본급을 받으면서, 부족한 생활비를 잔업·철야, 즉 장시간 노동으로 채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시간당 임금이 같아도 주당 노동시간이 제한되면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인데, 오히려 임금이 삭감된 셈이다. 이처럼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통제하자 상용직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고용을 버리고 대거 일당제 및 물랑팀으로 전환했다. 조선소 일당제, 물량팀의 노동조건은 건설노동자와 같다. 일한 만큼 돈을 준다고 하면서, 팀별로 ‘작업물량’ 단위로 계약을 한다. 이렇게 일하는 물량팀은 무조건 당일 정해진 물량을 마무리하도록 경쟁적으로 일한다. 물량팀에서는 주 52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는다. <본지 11월28일 15면 [장시간 노동 부추기는 정부 ②] 참조>

이렇게 조선소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규제와 상관없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왔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적용된 후에도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월 300~400시간 넘게 일해 왔다. 필자가 확보한 임금명세서에 따르면 한 이주노동자는 월 평균 460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그 외 노동시간이 적은 노동자들은 주로 신규채용 됐거나 적응 기간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어느 정도 숙련이 되면 기본적으로 월 30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이끈 채 잔업과 야간근무에 자진해서 뛰어든다. 잔업·특근이 없으면 배달 오토바이를 타며 하루를 두 번 살아 내기도 한다. 조선업은 특성상 주·야 맞교대 근무로 돌아가는데, 이마저도 비용을 축소하려고 임금이 낮은 이주노동자를 야간근무에 고정 배치하는 사업주도 있다.

이처럼 잔업·특근에 의지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규제위반을 신고할 리가 만무하니, 불법 장시간 노동이 판치는 현장이 된 것이다. 이미 주 52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고 있는데도 제조업에 연장근로시간 단위기간을 더 늘려 주자고? 이미 불법이 판치고 있는 조선업 장시간 노동에 예외를 적용해주는 게 아니라 최저임금을 제대로 올리고, 장시간 노동을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불황 때는 경기 핑계를 대더니, 2021년 이후 국내 조선업이 호황기 사이클에 들어선 뒤에도 삭감된 임금이 인상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조선업 활황에도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와 노동시간 확대 카드를 꺼냈다. 지역의 국회의원은 “거제 양대 조선소는 주 52시간 직격탄을 맞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야근·특근이 없어져서 조선 인력이 빠져 나갔다”며 노동시간 확대를 주장했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야근·특근 안 하고 살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 생각은 없는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열세인 이주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정규직 또한 주로 임금삭감 없는 데에만 관심이 쏟다 보니 사실상 노동시간을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바로 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목 놓아 외쳤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절규에, 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구사대가 동원된 기폭점이 잔업·특근 통제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중요하고 노동시간 규제도 중요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 전환을 주장하지 않고는 모두가 임시 방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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