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일부 업종·직종에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확대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 업종·직종은 주 52시간이 넘는 노동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까. 안전보건 전문가와 해당 업종 노동자들이 정부 계획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편집자>

 

▲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최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지난 3월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며 주 최장 69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내놓았을 때, 전 국민은 분노했다.

한 발 물러섰던 고용노동부가 지난 13일 대규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에는 ‘현행 주 52시간제는 업종·직종별 다양한 수요 반영이 어렵다’는 점을 들고나왔다. 정부는 마치 주 최대 노동시간 52시간 제한이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산업의 특성’에 따라 노동시간 규제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 해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는 ‘산업의 특성’을 이유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산업이 허다하다. 먼저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과 휴식’ 장 전체가 통으로 적용되지 않는 산업이 있다. 농림·축산·양잠·수산 사업이다. 하루 11시간씩, 한 달에 28일 일하면서 하루 종일 깻잎 1만5천장을 따는 이주노동자들이 가능한 이유다. 다른 나라에서도 농림사업, 축산사업 등이 노동시간 규제에서 일부 예외를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긴급한 파종이나 수확, 동물 해산이나 병든 동물 치료 등과 같이 연기할 수 없는 업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업종 전체에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과도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칙을 적용해도, 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까지 ‘유연하게’ 일을 시킬 수 있고, 탄력근로제나 특별연장근로제도 등을 통해 거기에 더한 유연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농림·축·수산업에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업종 특성에 맞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경직된 장시간 노동’ 체계를 낳고 있다.

노동시간 규제를 통으로 적용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금지, 4시간마다 30분 휴게시간 제공을 적용하지 않아도 되는 ‘업종’도 있다. 육상·파이프라인·수상·항공운송업이나 보건업이다. 버스 운전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후 졸음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뒤, 2018년부터 특례제도를 적용받는 업종 범위를 대폭 축소했지만, 5개 업종은 남아 있다. 5개 업종 10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여기 해당된다. 항공기 내외부 청소, 수하물이나 화물을 싣고 내리는 등의 공항 지상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 항만에서 배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일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모두 여기 속한다.

공항·항만·물류가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해도, 그래서 노동자들이 야간노동을 수행해야만 하더라도, 장시간 노동까지 허용할 필요는 없다. 주당 연장근로를 1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주당 40시간 일해야 한다는 노동시간 규제에 엄청난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40시간이 아니라 52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이보다 더 긴 시간을 허용할 특별한 ‘산업적 특성’은 없다. 더 적은 인력, 더 적은 비용으로 기업을 경영하려는 과욕만 부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특례업종 노동자들은 올해 뜨거운 이슈가 됐던 근로시간 개편안이 남 얘기로 느껴질 정도로, 이미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 지쳐 있다.

정부는 여기에 제조업과 건설업에서도 기본적인 노동시간 규제에 변칙을 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제조업·건설업이야말로 공장법 이래로 노동시간 규제가 만들어지고 적용돼 온 가장 ‘전형적인’ 사업이다. 이 업종들을 기준으로 하루, 1주, 야간 등을 단위로 노동시간 규율이 만들어져 왔다. 제조업·건설업까지 산업의 특성에 따른 예외를 주장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노동시간 규범을 무너뜨리는 행태다. 정말 무너뜨리고 싶은 것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당연한 선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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