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현주소는 어디쯤 왔고, 어떻게 해야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예방’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이런 문제에 답을 찾는 실무서 <노사가 함께 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선을 보였다. 기존의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와 달리 중대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구체적으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했다. 법이 정한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활용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사례와 예시,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매일노동뉴스>는 지난 28일 서울 합정동 노무법인 사람과산재 회의실에서 저자와 함께 좌담회를 열었다. 이번 좌담회는 한계희 본지 대표이사가 사회를 맡고 저자인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한창현 산업안전지도사 겸 공인노무사(사람과안전기술지도법인 대표·노무법인 사람과산재 대표), 손익찬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동대표)가 참여했다. 저자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의 의미와 현 상황, 개선방향 등에 관해 깊이 있는 견해를 제시했다.

“노사 스스로 문제점 체크, 자율점검이 핵심”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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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노사가 함께 보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을 축으로 법적 쟁점과 실무에서의 활용방안까지 담았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췄나.

유성규 :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을 위해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해 집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처벌만을 위한 법이 아니란 점에 힘을 줬다. 법 제정 이면에는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노력을 촉구하는 우리 사회의 요구가 담겨 있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제정됐다는 내용이 목적사항에 기재돼 있다. 법 이면에 담긴 진짜 의미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법 제정 역사와 사회적 의미를 독자들이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무서지만, 도입부에 그러한 역사와 법의 의의를 설명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는 점이 다른 실무서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해설 부분은 A부터 Z까지 핵심 키워드 중심으로 담아 최소화하면서 실무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중요한 것은 현장 작업자나 관리자가 법을 실제로 이해하면서 적용할 수 있는지다. 책에 포함된 ‘자율점검표’가 핵심이다. 안전보건책임자가 직접 점검표를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도록 했다. 위험성평가의 판단기준도 부록에 넣었다. 현장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장의 위험과 문제점을 인지하는 순간 개선이 시작될 수 있다.

한창현 : 경영책임자의 의무 이행과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축하고 이행할 것인가가 핵심이고, 현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이 부분에 집중해 서술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아홉 가지 의무 내용과 구축 방법을 거의 전부 담았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안전보건 전담조직과 인력이 있어 50명 미만 사업장에 초점을 맞췄다. 다양한 사업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안전보건 서식이나 체크리스트, 자율점검표가 책에 많이 포함돼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는 반기별로 점검해야 할 규정들이 많다. 자율점검표를 충실히 이행하면 사업주나 노동자 모두에 도움이 된다. 그래서 책 제목도 ‘노사가 함께 보는’으로 정했다. 현장에서 노동자나 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안전보건에 대해 양쪽 모두 오해한다. 노동자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목적은 사업주나 노조나 똑같다. 노사가 안전보건 활동을 하다가 이견이 있을 때 책을 보면 진지한 토론을 할 수 있고, 해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손익찬 : 중대재해처벌법 개념과 기소와 처벌 사례 부분을 집필했다. 전문지식이 없어도 기업 담당자나 노조, 일반 노동자가 혼자서 책을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풀어서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접할 때 ‘적용대상이 되는지’와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나눠 생각해야 한다. 적용대상 여부는 간략하게 설명하며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중대재해를 예방할 방법을 체크리스트에 담아 소개해 노사가 현장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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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열거한 ‘체크리스트’를 실제 활용할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법 시행령 13조는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이행사항을 서면으로 작성해 조치를 이행한 날부터 5년간 보관하도록 정하고 있다. 사업주나 안전보건 관리책임자가 체크리스트를 따로 복사해 정리해 보관한다면 안전한 현장 조성과 함께 서면보관의무도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두고 책이 발간됐기 때문에 실무에서 중요한 부분 위주로 빠짐없이 정리했다.

“체계 축적됐을 때 중대재해 예방효과 드러날 것”

사회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까지 험난했다. 지금 법이 어디쯤 왔다고 평가하나. 실무를 하면서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유성규 : 노사 모두 법이 제정됐는데 왜 바뀐 게 없냐고 한다. 그런데 너무 무리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아직 법은 ‘걸음마’ 단계다. 산재는 법·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개선될 성질이 아니다. 사회의 정치·문화·경제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라고 하는 사회의 병폐가 산재의 큰 원인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업에 촉구하고 있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을 하나씩 구축하며 축적됐을 때 법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너무 앞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한창현 :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을 때는 누구나 중대재해가 많이 줄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이전보다 사망사고가 조금 감소했지만, 법 제정 과정의 노력에 비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하지만 기업이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노력을 2~3년 정도 했을 때 효과가 나오므로, 지금 법의 효력을 다툴 시점은 아니다. 실제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변했다고 느낀 부분은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다. 어린이집이나 도서관 등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곳도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공공기관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선도하는 셈이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ISO45000(안전보건표준) 인증 등 체계를 구축하고 최고안전책임자(CSO)를 선임하는 등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에 신경 쓰는 모습이다. 문제는 체계는 구축했는데 현장에서 작업자나 관리감독자가 실제 활용하는 부분은 아직까지는 법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도급이나 용역업체 종사자 사망사고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50명 미만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컨설팅을 하며 120여개 사업장을 방문했는데, 체계를 구축한 사업장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인력이 없다. 예산도 부족하고 사업주의 의지도 미흡한 상황이라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절실하다.

손익찬 : 법 시행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산재가 이제는 “잘못된 것이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는 인식이 커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차를 운행하다 보면 언제든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기업을 운영하면 어쩔 수 없이 산재는 발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전반에 깔렸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최고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약속이 공유된다면 법 제정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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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정책적 수단으로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전복하는 것이 범죄가 아니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전범 재판’이 열리며 국제사회에서도 최소한 침략만큼은 안 되며 반인도적이란 규범이 생겼다. 중대재해의 경우도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란 관점이 있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소한 지켜야 하는 선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50명 미만 사업장 일단 적용, 이후 보완해야”

사회 : 법 시행의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여전히 50명 미만 기업에는 법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사망사고의 80% 이상이 되는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법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책의 효용성은 없을까.)

유성규 : 지난해 업무상 사망사고는 82%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따라서 영세사업장의 중대재해를 어떻게 예방할지를 중점으로 다뤄야 한다. 법 적용유예 논의는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할 문제다. 이제 법 시행이 시작인 만큼 빨리 50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세사업장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메울 것인지는 일단 적용하고 고민해야 한다. 만약 유예된다면 그 기간에 50명 미만 사업장은 무엇을 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책 내용을 참고해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한창현 : 중대재해처벌법 강의를 다니다 보면 법의 목적이 ‘처벌’인지 ‘예방’인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예방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 사용자측의 저항이 크기도 하다. 특히 소규모 제조업의 경우 예산이 없어 낮은 단가에 도급받아 안전한 기계를 설치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규모가 있는 기업보다 사망사고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 지점에서 처벌의 형평성을 따져야 한다. 법이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적용되다 보니 국가·사회적 낭비가 발생한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공공기관은 예산을 써가며 중대재해를 예방하는데 정작 조선업이나 건설업 등 위험 요소가 큰 사업장의 사망사고는 막지 못하고 있다. 고위험 업종의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먼저 안정화한 다음 주변으로 확대하는 게 효율적이다.

손익찬 : 법의 요구사항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시스템을 만들라는 것이다. 생산이나 마케팅에서도 시스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을 위해서도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대표이사가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시스템 안착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만약 50명 미만 사업장을 포함해 안전보건 관리체계가 전혀 없는 곳이라면 지금이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시간이 지난 뒤 정착될 것이다.

“원청 대표 유죄 선고는 유의미, 양형은 아쉬워”

사회 : 법 시행 이후 선고된 사건 11건 중 실형 선고는 한 건밖에 없다. 법인 벌금형도 법정형 상한선(50억원)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검찰 기소와 법원 선고형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나.

유성규 :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처벌 수위가 낮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법 시행 초기만 해도 과연 원청 대표나 경영책임자가 기소될 것인지, 법원이 실형을 선고할지를 두고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가졌다. 심지어 위헌까지 논란이 됐다. 그런데 현재까지 판결 내용을 봤을 때는 모두 유죄 선고가 내려지고 있다. 앞으로 법관도 산업안전보건 범죄를 판단할 때 깊게 고민하고 판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창현 : 위험성평가와 관련한 중대재해 판결(5호 선고)이 눈에 띈다. 크레인에 ‘두줄걸이’로 철근을 묶어야 하는데 한 줄로 묶는 바람에 줄이 풀려 낙하한 철근에 맞아 노동자가 숨진 것과 관련해 법원은 형식적인 위험성평가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사업장에 맞는 실질적인 위험성평가가 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판단이 부족했는데, 이러한 부분이 법 시행 이후 바뀌었다. 그러나 위험성평가는 자율적 체계에 불과한데, 적정성까지 법관이 개입하는 것은 실무자 입장에서는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다.

손익찬 : 하청 노동자의 사망사고에 원청 대표가 기소됐다는 점을 유의미하게 볼 수 있다. 원청이 실질적인 권한이 있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CSO를 선임했을 때도 실질적으로 대표이사가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기소된 사례도 있다. 법원에서도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법 내용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검찰과 법원은 적어도 그런 문제가 없다고 본 셈이다. 경영책임자의 지휘·감독의무를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양형을 보면 대부분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나오는 점은 아쉽다.

“노사가 함께할 때 중대재해 예방 가능”

사회 : 중대재해처벌법과 어떤 인연이 있나. 앞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한마디 해달라.

유성규 : <매일노동뉴스>와 함께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하는 노동건강연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10년 가까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의 성과가 쌓여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과연 우리나라에 입법이 가능할지 의문이 있었는데 법이 만들어지고 책도 만들다 보니 뿌듯하다. 책 제목처럼 중대재해 예방은 노사가 함께해야 가능하다. 경영책임자가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을 구축할 때 노동자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가길 바란다.

한창현 : 법 시행 이후 서울지역 120개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 컨설팅을 했다.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될 때 위험의 외주화가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도급 종사자 보호의무를 명시해 길잡이가 되고 있다.

손익찬 : 민변 소속으로 ‘중대재해처벌법 10만인 입법 운동’할 때 실무를 담당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오래 잠자던 법을 다시 깨우고 통과시키는 과정에 동참했다. 중대재해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산업현장에서 가족이 안전하지 않은데 일하는지 몰랐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중대재해 발생 이후 사용자가 가장 많이 하는 변명이 ‘작업자 과실’이다. 설령 그게 맞더라도 한번 실수해 사람이 사망하는 사업장을 만들어선 안 된다. 그게 법이 만들어진 목적이다. 기업은 여전히 예민하겠지만, 책을 보면서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회=한계희 매일노동뉴스 대표이사
정리=홍준표 기자
사진=정기훈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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