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연구활동가
▲ 윤애림 노동권연구활동가

지난 10월27일,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새로운 ‘공동 사용자 판단 기준’ 시행령을 공포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미국노총을 비롯한 노조운동은 환영 입장을,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등 사업주단체는 비판 성명을 내놓았다. 이렇게 상반된 반응들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연방노동관계법에 관해 잠시 살펴보자.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뉴딜 정책’ 일환으로 1935년 제정된 연방노동관계법은,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를 비롯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를 주로 규율하고 있다. 즉, 연방노동관계법상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으면 연방노동관계위원회는 단체교섭에 응하라는 명령을 비롯해 다양한 구제명령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파견·용역·하청을 활용하는 이른바 ‘원청’이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발생했다. 법원과 연방노동관계위는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노동자의 기본적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들을 공유하거나 공동 결정하는 자’는 ‘공동 사용자(joint employer)’에 해당한다는 결정례를 축적해 왔다. 그런데 ‘기본적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들을 결정’한다는 것, 달리 말하자면 노동조건에 관한 지배권(right to control)을 가진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관해 결정례에 변화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연방노동관계위는 원청이 지배권을 실제로 행사한 경우뿐 아니라 하청과의 계약상 지배권을 갖는 것으로 돼 있는 경우에도 공동 사용자로 인정했다. 즉, 원청이 “항상 하청노동자 옆에 꼭 붙어서 드라이버를 돌리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봐야만” 공동 사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하청·용역업체와의 계약상 혹은 하청 관리자를 통해 간접고용 노동자를 지배한 경우에도 공동 사용자로 인정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부터 연방노동관계위의 결정이 보수화돼, 원청이 지배권을 실제로 직접 행사한 경우에만 공동 사용자로 인정했다. 당연히 원청은 계약서에 있는 권한이라는 구실로, 혹은 하청업체 뒤에 숨어서 사용자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2015년 연방노동관계위는 브라우닝 페리스 사건 결정을 통해 이러한 보수적 판단기준에 대해 스스로 반성하는 견해를 공표했다. 노동 현실보다 협소하게 공동 사용자를 인정하는 결정으로 인해 실제 사용자가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하는 간접고용이 급증하는 데 연방기관이 일조했음을 반성하면서, 연방노동관계법 제1조가 천명한 ‘단체교섭의 촉진’이라는 목적을 위해 공동 사용자 판단기준을 재조정 내지 정상화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2015년 결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공포하는 등 원청 책임을 도로 협소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공동 사용자에 관한 새로운 시행령은 트럼프 시절의 시행령을 폐기, 대체하는 것이다. 하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라도, 또는 ‘도급’계약의 문구를 빌어 노동조건을 지배하는 경우라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사용자임을 확인한 미국판 노조법 2조 개정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시행령에 따르면 △임금, 부가급여 및 기타 보상 △노동시간, 근무 스케쥴 △업무의 배정 △업무수행에 대한 감독 △업무수행의 수단·방식·방법, 징계 등에 관해 정한 규칙 및 지침 △채용 및 해고를 포함한 고용 기간 △노동 안전보건에 관련된 노동조건 등 어느 하나라도 지배할 권한을 가진 자는 공동 사용자로서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며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연방노동관계위는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실질화해야 하는 이유를 실질적 평등에서 찾고 있다. 사용자책임을 너무 좁게 인정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관계된 사업주가 둘 이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체교섭권을 사실상 박탈당하게 되는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간접고용을 통해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려는 탈법을 제어하지 않으면,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준법기업이 탈법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불공정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도 경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정’을 떠들면서도 일터에서의 자유와 공정을 실현시킬 수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에는 반대만 일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극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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