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6일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헌법 수호’를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많은 CEO(최고경영자)가 자기 기업이 지향하는 비전과 가치를 늘 생각하고, 그것을 직원들과 거래처 등에 알리고 전파하고 해야 큰 돈을 벌게 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비전과 가치는 헌법에 담겨 있고 법무부와 공정위·법제처는 이 같은 헌법을 수호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비전과 가치’ ‘헌법 수호’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어 모르겠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을 강조하거나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경쟁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규제’나 ‘외국인 투자기업이 우리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데에 지장이 되는 제도들’을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 점으로 미뤄 보자면, 기업 자유 최대화가 핵심인 듯하다.

그런데 대통령과 공정위·검찰 등 정부기관은 노동 3권이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사실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 같다. 반면 법원은 노동 3권의 헌법적 가치를 재확인하는 판결을 계속 내놓고 있다. 택배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택배기사들을 조직한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책임이 있다고 CJ대한통운이 인정한 최근 행정법원 판결이 좋은 사례다. 그 대표적 대목을 읽어 보자.

“사적자치가 존재하는 계약법 질서하에서 계약관계의 존부에 따라 근로조건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계약관계의 밀접성의 정도 또는 존부에 따라 기본권 행사 자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러한 자격을 가지지 못하는 하청근로자에게는 해당 근로조건에 대한 기본권 행사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어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왜냐하면 하청근로자는 원청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는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어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유명무실해지거나 형해화돼 헌법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기본권으로서 보장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원청사업주가 경영상의 필요나 효율성을 위해 사업이나 업무의 일부를 하도급 주는 것은 기업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하청근로자의 노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결정권을 보유하는 원청사업주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하면 하청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의 범위는 원청사업주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하청근로자의 근로 3권 행사 범위도 좌우되는데, 원청사업주가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근로조건의 범위가 넓을수록 하청근로자가 원사업주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근로조건 향상의 범위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하청근로자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행사 범위가 오로지 원청사업주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사실상 하청근로자의 근로 3권 보장 범위나 제한의 정도가 원청사업주에 의해 결정되고, 그 제한의 정도에 따라서는 유지·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근로조건하에서의 노무제공을 합법화하는 것과 같다.”

어려운 법률용어가 끼어 있긴 하지만 재판부가 비정규 노동자의 현실을 바로 보고 헌법의 효력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헌법에 합치되는 법해석을 하려 고심했음을 보여주는 명문이라 아니할 수 없다.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 3권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동기본권의 실질적 박탈 상태를 법적으로 용인한다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사업주의 경영 방침이나 사업구조 설계에 따라 헌법상 기본권의 효력이 실질적으로 제한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일갈하고 있다.

실질적 사용자에 대한 단체교섭을 제한하는 것은 “계약관계의 존부에 따라 기본권 행사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라는 법원의 지적을 입법 요구로 표현한 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 요구다. 윤석열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요구를 더 이상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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