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용노동부가 지난 7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 2층 로얄볼룸에서 연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공청회. <자료사진 강예슬 기자>

정부가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시범실시하겠다던 ‘필리핀 가사도우미’ 도입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애초 계획대로 12월에 국가 간 계약을 통해야 할 업무를 상대국의 양해 없이 일방 진행하며 저출산 대책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것이다.

이달 내 근로계약 체결 사실상 무산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동부는 가사도우미 도입을 위한 필리핀과의 업무협약 현황을 묻는 서면질의에 “송출국 협의 진행 중(필리핀 등)”이라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필리핀의 복잡한 의사결정구조와 필리핀 이주노동자부 장관 공석,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협의를 계속 진행 중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부가 9월1일 발표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안을 겹쳐 보면, 당초 계획보다 한 달이 넘게 지연되고 있다. 계획안에서 정부는 9월까지 송출국 외국인 구직자명부를 구성하고 고용허가서를 발급해, 10월까지는 송출국 가사관리사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계획을 세웠다.

비자 발급과 입국 전 교육, 입국 후 교육, 사내 심화교육을 거쳐 필리핀 가사노동자들은 12월부터 일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달에 완료했어야 할 고용허가서 발급조차 안 된 상황이다.

한국과 필리핀은 인력송출 협약이 맺어져 있지만, 인력송출 업종은 제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필리핀과 몽골을 포함한 16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농축산업과 어업, 건설업, 서비스업에 종사할 인력을 송출받고 있다. 가사노동에 해당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는 국가는 몽골과 우즈베키스탄·중국뿐이다.

“필리핀은 부르면 온다는 외교적 갑질”
노동부 “필리핀 정부와 계속 대화 중”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도입이 지연되면서 애초부터 저임금 이주노동자 도입에만 신경쓰면서 현지 국가의 인력송출 분위기 등을 감안하지 않고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계획한 가사관리사 노동조건 등이 필리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필리핀은 이주노동이 국가의 근간이 되는 나라다. 이주노동자 보호에 적극적이고, 더군다나 최근 여러 국가에서 학대를 당하기도 해 이주노동자 보호에 더 관심이 있는 상황”이라며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굉장히 불리한 조건인데 필리핀 정부가 송출을 허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밝힌 시범사업을 살펴보면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는 고용불안 상태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주거비를 부담해야 한다. 우선 6개월짜리 시범사업이라 고용이 6개월 뒤에도 이어질지 확실치 않다. 제공기관이 마련한 숙소에서 본인이 숙소비를 부담해야 하고, 원하는 경우 스스로 다른 숙소를 구할 수 있지만 자부담이 늘어난다. 근로기준법상 휴게·휴일, 연차휴가 등 일부 규정도 가사노동 특성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적용이 제외된다.

고충처리를 위해 고객과 가사노동자를 이어 주는 서비스 제공기관과 가사서비스종합지원센터를 통해 지원하겠다고 제시하는데, 현행 고용허가제에는 사업장 변경이 제한되기 때문에 알선기관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 경우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불이익과 학대 등 문제 발생 최소화를 위해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인증기관을 선정했으며, 출퇴근제를 도입한 것”이라며 “시기는 송출국과 협의 진행 경과 등에 따라 변경될 수 있어 이르면 12월이라고 했던 것이다. 필리핀과는 계속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수진 의원은 “국가 간 양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필리핀 노동자들은 부르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한 일종의 외교적 갑질”이라며 “12월에 필리핀 가사노동자를 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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