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가장 좋은 것은 내 아이를 내가 키울 수 있게 단축근무나 유연근무를 활성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37개월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고은씨는 정부가 추진 중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발족한 워킹맘&대디 현장 멘토단에 참여 중인 그는 “맞벌이 (가정에) 지원금을 준다거나, (회사에) 대체인력 지원금을 주는 것이 훨씬 좋은 정책 같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전에) 근로시간을 조율하는 것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에 따른 정책의 실수요자로 거론되는 아이를 양육하는 맞벌이 부부도 정부의 졸속적인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 중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 시행 뜻이 확고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하반기 E-9 필리핀 가사노동자 100여명 시범사업

고용노동부는 31일 오전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 2층 로얄볼룸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개된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고용허가제(E-9)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100여명을 올해 하반기 중 국내에 도입해 6개월 이상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정부가 인증한 가사서비스제공기관에 고용돼 통근형태로 일한다. 이용자 수요에 맞춰 종일 혹은 시간제로 근무한다.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을 적용받아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보장한다.

도입 국가는 필리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뢰성이 있는 인력확보를 위해 가사인력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를 우선 검토한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직업훈련원(TESDA)에서 6개월 동안 가사노동 관련 훈련을 받으면 수료증을 발급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가정 내에서 일하는 만큼 경력·지식, 연령, 언어능력, 범죄이력 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 시행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 지원대상은 육아부담을 지고 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부모, 임산부 등이다.

강예슬 기자
강예슬 기자

“서비스 이용 안 할 것” 부정적 반응 ‘대세’

자녀가 있는 노동자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정책에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표했다.

영유아 자녀를 키우고 복직을 앞둔 직장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강초미씨는 “저는 이(외국인 가사노동자)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명확히 했다. 그는 “50·60대 가사·육아 노동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저희들이 가지지 못한 육아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수요자가 20~40대 맞벌이 부부인지, 단순히 가사노동만을 중시하는 수요자인지 정책을 검토해 봤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워킹맘 김고은씨는 “고령화된 사회에서 중년여성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정책”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으로) 돌봄시장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지원금을 투입할 게 아니라 조부모, 친인척이 돌봄을 했을 때 지원금을 주는 것이 맞벌이 (부부가) 더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에 1억5천만원의 예산을 투입,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인증 가사서비스제공기관은 해당 예산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 초기 정착비용을 지원한다. 1인당 월 25만 수준의 비용이다.

최영미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은 “비용을 낮추고자 지원하는 것인데, 비싼 서울에서 월세나 전세, 온갖 세금을 내고 사는 정주(가사)노동자에게는 유사한 대책을 세우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노동·시민사회 “밀실 추진” 비판

졸속 정책 추진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정부는 8월 중 수요조사를 시행하고, 외국인력정책심의회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안에는 시범사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 참석해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며 범정부 TF에 논의를 제안한 뒤 속전속결로 추진됐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급하게 밀실에서 진행되는 느낌”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이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압박 때문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최영미 위원장은 “외국인력 도입이 앞으로 늘어날 퇴직자, 60대 중고령 구직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얼마나 세심한 준비가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본 적이 없다”며 “누가 얼마나, 왜, 어느 정도 비용의 외국인력을 필요한지에 대한 답도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돌봄시장은 기본적으로 정부 정책의 책무성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정부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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