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14일 오후 서울역 앞에서 열린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파업출정식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철도노조(위원장 최명호)가 수서행 KTX 도입을 촉구하며 14일 오전 9시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이날 서울역 세종대로를 포함해 5개역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하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동시에 “정당성과 명분 없는 파업”이라며 노조 파업을 흠집 내고 있다. 하지만 파업의 주된 쟁점인 수서-부산 구간 SRT 열차 운행 감소 조치에 국민 반발도 만만치 않아 정부가 노조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조치에 부산 시민 ‘부글부글’

국토부와 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18일 오전 9시까지 예정된 이번 파업으로 928개 열차가 운행 중지된다. 여객열차의 경우 평시 대비 40% 이상 운행량이 줄어든다. 철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른 필수유지업무다. 파업시에도 노사가 합의한 운행률을 유지해야 한다. 고속철도의 경우 56.9%, 광역전철 63%, 새마을호 59.5%, 무궁화호 63%다. 화물열차는 평시보다 최고 80% 수준까지 감축해 운행된다.

4년여 만에 발생한 이번 파업은 2013년 철도노조 파업과 닮은 점이 많다. 2013년 11월 철도공사가 수서행 KTX를 운영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하자 노조는 철도 민영화로 규정하고 한 달 뒤 파업에 나섰다.

이번 파업 역시 SRT 체제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됐다. 국토부는 이달 1일부터 수서-부산 구간 SRT 열차를 떼다가 전라선 SRT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수서발 부산행 SRT는 하루 10회(4천100여석) 운행이 줄었다. SRT를 운영하는 ㈜SR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무리한 운행에 나섰다는 게 노조 설명이다. 정부가 SRT와 KTX 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산 시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수서-부산 구간에 철도공사 소속인 KTX를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 시민들의 반발은 크다. 부산시 역시 1일부터 국토부와 SR에 SRT 감축에 대한 대책으로 예매 좌석 할당 비율 상향을 요구하기도 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부산녹색소비자연대, 부산참여연대 등 부산의 시민·사회단체도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규탄했다. 공청회나 설명회 한번 없이 SRT 운행 열차를 감축한 것에 부산 시민들의 우려는 컸다. 노조가 지난달 부산 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1.2%의 응답자가 부산과 수서역을 오가는 KTX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기도 했다.

최명호 위원장은 이날 서울역 출정식에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교통불편을 가중하는 국토부는 제발 정신 차리고 국민이 원하는 게 뭔지 되돌아보라”며 “경쟁을 위한 경쟁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역갈등까지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 공격 ‘수위 조절’하는 원희룡 장관
“부산 시민 반발에 압박받은 듯”

수서-부산 구간 열차 감소에 대한 시민 반발이 만만치 않자 정부가 노조파업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부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나 건설노조의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는 이날 오전 “철도는 국민의 것”이라며 “즉각 현장으로 돌아오라”는 수준의 입장만 남겼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SRT 감축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공분이 상당하다”며 “원 장관이 불법파업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건 공사나 정부 역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근무형태와 성과급에 대한 철도 노사 합의를 없던 일로 만든 것도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다. 정부는 수서-부산 구간에 KTX를 투입하라는 노조 요구가 근로조건과 관계없다는 입장인데, 정작 근로조건과 직결되는 노조 요구는 정부 때문에 제기된 셈이다.

이번 파업에서 노조 요구 중 하나인 ‘4조2교대 전면 시행’은 2018년 6월 철도 노사가 합의했던 내용이다. 당시 철도 노사는 “근무체계 개편을 위해 2019년 말까지 시범운영을 실시하고 2020년부터 근무체계를 개편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돌연 국토부는 잇단 철도 사고의 원인을 4조2교대 근무체제에 돌리면서 올해 초 4년째 시범운행하던 4조2교대를 3조2교대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마찬가지로 2018년 노사가 합의한 성과급 지급 비율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철도공사는 기본급 대비 100%로 성과급 지급을 약속했지만 지난 7월 기본급의 92%만 성과급을 지급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예산운용지침으로 정한 총인건비를 초과해 경영평가 등급이 낮아진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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