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열차승무원’ 업무는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에 운전·관제업무와 달리 열차승무 업무는 필수유지업무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으므로, 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열차 운행에 지장이 없다는 취지다.

‘필수유지업무’는 필수공익사업 업무가 정지되는 경우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코레일은 이미 2009년 11월 철도노조 파업 당시 유사한 소송을 내 패소가 확정됐는데도 또다시 ‘소송전’을 이어 왔다.

노사협의 불발, 2019년 파업 이후 노동위로

15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코레일이 열차승무원 업무는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재심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12일 원고 패소로 판결하고 중노위 판정을 유지했다.

소송은 코레일이 2019년 노사협의회에서 ‘열차승무’와 ‘차량 정기검수’를 필수유지업무로 지정하기 위해 노조와 협의했지만 불발되면서 시작됐다. 철도노조는 2019년 11월20일부터 5일간 4조2교대 시행을 위한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당시 파업에는 열차승무원을 포함해 광역역무, 여객매표·고객상담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참여했다.

그러자 코레일은 이듬해 8월 열차승무업무는 필수유지업무(운전업무)로서 열차팀장·여객전무·전철차장이 대상이라는 취지로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결정을 신청했다. 충남지노위는 “열차승무업무는 노조법 시행령 규정에 따른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노조법 시행령 22조의2 [별표1]은 운전·관제업무, 전기·신호·통신시설 유지·관리업무, 선로점검·보수업무를 필수유지업무로 정하고 있다.

코레일 “열차승무원 파업 참여시 운행 불가능”

중노위도 초심을 유지하자 코레일은 2022년 5월 소송을 냈다. 코레일측은 “열차승무원의 대부분이 노조 조합원인 상황에서 승무원 전원이 파업에 참여할 경우에는 열차의 운행 자체가 불가능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교통공사·부산교통공사와 비교해도 억울하다는 주장도 펼쳤다. 중노위가 코레일 열차승무원 업무와 유사한 서울교통공사의 차장업무와 부산교통공사 안전운행요원의 열차 수동운전업무를 필수유지업무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코레일 청구를 기각했다. 필수유지업무를 정한 노조법 시행령에 열차승무업무가 포함돼 있지 않고, 열차승무업무가 필수유지업무와 비슷한 성격이 일부 있더라도 이미 정해진 필수인원만으로 정상적인 열차운행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코레일의 ‘2020년 필수유지 운영 계획안’과 운영내규를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르면 운전업무(기관사·부기관사), 관제업무, 차량·전기·선로업무가 필수유지업무로 분류된다. 열차승무원은 △열차승강문 안전취급 △열차 출발전호 △열차 무선교신 △도중 정차역 도착시 비상정차 조치 △열차 퇴행운전시 추진운전전호 △열차 감시 및 정시운전 노력 △기관사와의 방호 협조조치를 담당한다. 기관사·부기관사와 역할이 완전히 구분된 셈이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이미 필수유지업무에 대해 대상직무별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수준, 필요인원 등이 정해진 이상 (코레일 규정상) 필요인원과 운영수준만으로도 정상적인 열차운행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충족됐다”고 판단했다. 기관사를 제외한 승무원을 열차 탑승에 제외할 수 있다는 코레일 운전취급규정도 근거로 삼았다.

법원 “필수유지업무 시행령에 열차승무 미포함”

철도노조가 2019년 11월20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철도노조 서울지부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노조는 인력 충원, 총인건비 정상화, KTX-SRT 통합 등을 요구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철도노조가 2019년 11월20일 오후 서울역 앞 광장에서 철도노조 서울지부 총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노조는 인력 충원, 총인건비 정상화, KTX-SRT 통합 등을 요구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2009년 판결도 인용했다. 코레일은 그해 6월 열차승무원도 필수유지업무 필요인원에 포함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2010년 7월 패소가 확정됐다. 코레일측은 이후 “열차승무원의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령이 개정됐고, 전철차장은 승강장 안전문 취급업무도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열차승무원을 필수유지업무 담당 인원에 포함시켜야 할 정도의 중대한 사정변경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교통공사와 부산교통공사 사례 역시 코레일과 같지 않다고 봤다. 필수유지업무 인정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는 부기관사가 없는 점이 고려됐고, 부산교통공사는 무인 경전철이라 기관사가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도노조는 열차승무원을 필수유지업무 대상에 포함하려는 코레일의 시도를 경계했다. 양현 노조 법규국장은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코레일은 열차승무원 업무를 필수유지업무에 포함하기 위한 시행령 개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화물열차업무도 필수유지업무라고 주장해 이마저 포함된다면 노조 쟁의권은 더욱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조를 대리한 이종희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노조법 시행령에서 필수유지업무의 대상직무를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업무에 필수유지업무와 가까운 성격의 업무가 포함됐더라도 필수유지업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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