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노조 생명홀에서 연 산별 총파업투쟁 계획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노조 생명홀에서 연 산별 총파업투쟁 계획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섰던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엔데믹 선언 2개월 만에 총파업에 나선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나순자)는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현장의 인력대란과 필수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에서 환자 안전과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 하는 범국민투쟁을 전개한다”며 13~14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노조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7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투표율 82.07%, 찬성률 91.63%(무효 0.18%)로 가결했다. 노조 산하 127개 지부, 145개 사업장 노동자 6만4천257명이 파업 참여 대상이다. 다만 파업 당일 의료공백을 막기 위해 응급실과 중환자실 같은 필수유지 업무부서 인력을 남기고, 응급대기반(CPR)을 배치할 예정이어서 실체 참여 인원은 이보다 다소 적을 전망이다. 정부와 사용자쪽 대응에 따라 파업 기간은 길어질 수 있다.

91.6% 찬성, 쟁의행위 가결
국·사립대 주요 병원도 동참

정기훈 기자

이번 파업에는 주요 대학병원도 참여한다. 경희의료원과 고대의료원(안암·구로·안산), 이화의료원(목동·서울), 한양대의료원(서울·구리), 충남대병원(대전·세종),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대병원, 경상국립대병원의 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노조는 2004년 주 40시간 근무제 관련 총파업 이후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노조는 12일 파업 전야제를 시작으로 13일과 14일 잇따라 집회를 연다. 이후 정부와 사용자 대응을 점검한 뒤 무기한 파업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파업은 2021년 마련한 9·2 노정합의 불이행과 사용자쪽의 불성실한 교섭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당시 노조와 보건복지부는 의료인력 정상화와 처우개선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행계획 마련은 감감무소식이다.

노조의 핵심 요구 중 하나인 근무조별 간호사 1명당 환자 5명 기준 마련도 제자리걸음이다. 나순자 위원장은 “간호사 한 명이 환자를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30명까지 보느라 버틸 수가 없어 환자 곁을 떠난다”며 “인력이 부족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극한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노조의 보건의료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절반(50.5%)은 “한 주에 한 번 이상 식사를 거른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지난 5월 간호사 한 명당 환자 비율을 1 대 5로 줄이는 것을 “지향하겠다”고 발표도 했다. 그러나 노조와의 이행협의 과정에서는 간호사 한 명 대 병상수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제도를 존속시키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되면 병상 가동률과 직접 환자를 간호하지 않는 인력, 교대제 근무 영향 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근무조별 간호사의 부담이 과중한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노조가 ‘근무조별’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노조 연구에 따르면 일반병동 기준 간호사당 환자수는 1 대 15.6명이다.

이 밖에도 노조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 △의대 정원 증원 및 공공의대 설립 △코로나19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 확대 △코로나19 영웅(보건의료인력) 정당 보상 △노동개악 중단 및 노동시간 특례업종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합법파업인데 정부는 불법몰이만”
의료노련도 의료 공공성 강화 정부에 요구

통상 파업에 앞서 정부와 사용자가 노조와 물밑교섭을 하곤 하지만 이번엔 어려워 보인다. 나순자 위원장은 “복지부는 노조 파업에 굴복할 수 없고, 노정교섭도 어렵다며 각종 (노정)회의와 협의체 대화를 중단했다”며 “사용자도 정부정책과 제도가 구체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요구도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먼저 대화의 채널을 닫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조는 이번 파업이 불법적인 정치파업이라는 일각의 비난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나순자 위원장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노조 총파업을 단순한 정치 틀 짓기로 엮어 불법 정치파업으로 몰아가는 것은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노조 총파업은 현행법상 절차를 모두 충족한 합법일 뿐 아니라 비싼 간병비 문제 해결과 보건의료인력 및 의사 확충, 불법의료 근절,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전담병원 회복기 지원을 통해 의료대란을 해결하기 위한 파업”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에 대비해 지난달 의료기관 파업 상황 점검반을 꾸리고, 보건의료 재난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의료노련도 정부에 의료 공공성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연맹은 이날 정부에 8대 핵심 요구안을 전달했다. 의료 공공성 확보를 비롯해 △의사인력 균형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법 제정 △간호사 대 환자수 법제화 △안전한 의료환경 조성을 위한 보건의료인력 준수법 제정 △보건의료 직종별 업무 범위 명확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 △올바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만성기 환자를 위한 의료 전달체계 개편 △건강보험 국고지원 항구적 법제화다. 연맹은 “빠른 시간 안에 논의가 진행되지 않으면 2만 조합원의 역량을 결집해 대정부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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