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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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적절한 인력을 배치받지 못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이로 인해 모든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하지 못한 가해자입니다.”

지역 한 대학병원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간호사 A씨는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증언대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A씨를 비롯한 간호사들은 의료인력 부족으로 환자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며 인력충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혼자 18명의 환자를 맡아야 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침상에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의 경우 간호사가 2시간에 한번씩 가래를 직접 제거해야 하는데 여러 업무가 한꺼번에 몰리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단다. 하루는 3~4시간에 한번씩 가래를 제거한 환자가 폐렴으로 중환자실로 옮기는 일이 발생했다. A씨는 “다행히 그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한 뒤 퇴원했지만 저는 혼자 범죄자가 된 마음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적절한 간호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사직을 택하는 간호사들도 있었다.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7년간 일하다 그만뒀다는 간호사 B씨는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환자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일하는 게 현실”이라며 “내과병동에서 간호사 1명당 16명의 환자를 봐야 했는데 수술, 검사, 입·퇴원, 응급상황 등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퇴근하면 다리가 머리카락처럼 흐물거리곤 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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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높은 사직률은 병원 현장의 숙련 간호사가 부족한 문제로도 이어진다. 수도권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막내’ 간호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C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1~2개월 교육 후 적게는 8명, 많게는 13명의 환자를 책임져야 하는데 교육받지 않은 상황과 직면하면 제 자신이 부끄럽고 환자에게도 미안해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C씨는 “막 입사했을 때 동기는 4명이었는데 지금은 저 혼자”라며 “매일 바뀌는 환경에서 일하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고 하나같이 ‘이러다 내가 환자를 죽일 것 같다’고 말하며 병원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학장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의 환자를 돌보는데 미국(5.7명), 스웨덴(5.4명)과 비교하면 중노동”이라며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배치해야 하지만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의대정원 대폭 확충과 간호사대 환자 비율 1대 5 제도화, 직종별 인력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나순자 위원장은 “인력부족 때문에 의료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의료인력을 국가가 양성하고 배치하고 지원하는 보건의료인력 국가책임제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지부 128곳(사업장 147곳)이 동시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인력 충원 등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13일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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