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지난 7일 열린 ‘덕분에’라더니,‘영웅’이라더니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에서 나순자 위원장이 인사말하고 있다.<정기훈 기자>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일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수술하기 전 혈당 체크 지시를 내리는 건 의사 업무거든요. 그런데 혈당 체크가 안 돼 있으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요. 그걸 안 한 간호사가 잘못한 일이 되는 거예요.”

대학병원 10년 차 간호사 김한나씨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열린 북토크 현장에서 본인의 경험을 털어놨다. 담당 전공의가 휴가를 간 탓에 수술 중이던 다른 담당 의사에게 ‘노티’(notify의 줄임말·의사에게 환자 증상이나 상태를 보고하는 것)를 했다가 폭언을 들었다고 말이다.

김한나씨는 의사들이 간호사를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며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를 “더 이상은 참으면 안 될 것 같았다”고 한다. 녹취록과 사건 일지 등을 들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아갔고, 해당 의사에게는 정직 1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김씨는 이러한 경험을 보건의료노조 수기 공모전에 제출했고, 김씨의 글은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김씨는 “스스로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환자들에게) 가해자가 된 느낌이었는데 많은 위로를 받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26편 수상작 모아 책으로
병원현장 고충 생생한 경험 담겨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3월13일부터 5월12일까지 두 달간 조합원을 대상으로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인력부족으로 겪는 고충을 비롯해 의사인력 부족에 따른 불법의료 실태, 간병비 부담 사례, 코로나19 경험담 등을 주제로 80편이 제출됐다. 이 중 수상작 26편을 모아 책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를 펴냈다. 이날 북토크에는 최우수작을 수상한 김한나 간호사, 우수작을 수상한 이순자 간호사, 입선한 김문영 간호조무사·방지은 간호사가 참석했다.

대학병원 간호사 이순자씨는 ‘공짜노동’ 문제를 지적했다. 인력부족과 과도한 업무량으로 실제 근무시간보다 1~2시간씩 더 일하는 게 일상이 됐다는 것이다. 병동에서 근무하는 이씨는 “혼자서 하루 최대 13명의 환자를 볼 때면 퇴근하고 파스로 도배를 해야 한다”며 “주말근무시 환자수가 줄어 6~7명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때는 ‘친절한 간호사’로 바뀐다. 환자를 대하는 컨디션이 다르고 태도도 달라지니 환자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간호조무사도 마찬가지였다. 2년 가까이 간호조무사로 일했다는 김문영씨는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환자분 잠깐 기다리세요’다”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병동에서 간호사 1명당 환자 8명을 본다면 간호조무사는 30명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정신 담긴 소중한 글”

이날 북토크에 참석한 박미경 전태일재단 기획실장은 “100번의 집회보다 이 글이 가지는 힘이 클 것 같다”며 “자신보다 타인을 위하는, 다 함께 잘사는 세상을, 행복한 공동체를 꿈꾸면서 자신을 헌신했던 전태일의 정신을 이어 가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오늘의 전태일’”이라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 아버지라고 밝힌 A씨는 “간호사가 되면 평생 직장인 줄 알았는데 사지로 보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딸을 포함한 간호사들이 강제노동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퇴근시간 이후에도 병원에 남아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2021년 9월 보건복지부와 노조가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충원을 합의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 제대로 이행이 안 되고 있다”며 “올해는 반드시 합의가 이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다. 왜 총파업을 하는지, 현장의 문제들을 왜 해결해야 하는지 (북토크를 통해) 조금이나마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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