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만 주룩주룩 내렸다.예상은 했다. 청년들은 여기 왔으면 그림도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농을 쳤다. 청년들은 좁은 인도에 조촐한 무대를 마련하고 우의를 챙겨 입고 앉았다. 행사 시작 전 빗줄기가 다소 거세지자 스피커 같은 장비에 비닐을 씌우느라 분주했다. 한 청년노동자는 기자에게 다가와 가만히 말했다. “기자님도 야근하시네요.”
이날 김씨를 비롯한 양대 노총 청년노동자와 청년단체·청년정치인 등 20명은 6일 저녁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이정식 장관 초청 청년노동자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장관은 일찌감치 불참을 확정했지만 강행했다.

▲ 양대 노총과 청년단체 청년노동자는 6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이정식 장관과 공개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장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어 있는 장관석의 모습. <이재 기자>
▲ 양대 노총과 청년단체 청년노동자는 6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본청 앞에서 이정식 장관과 공개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장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어 있는 장관석의 모습. <이재 기자>

고졸 노동자 주 50~55시간 수당 없이 공짜야근

청년에게 야근은 일상이었다. 올해 스물 한 살이라는 김미성씨(특성화고노조 조합원)는 영화 <다음, 소희>를 보면서 스스로를 떠올렸다고 한다. “저는 21살 사무직입니다. 빨리 돈을 벌려고 상고에 들어갔고 고3에 문구업 회사로 현장실습을 나갔습니다. 취업한 회사에서는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하면 이것도 모르냐며 따진다든지 직장상사가 통장을 던지고 초등학생도 이것보단 잘 하겠다고 말하고 등을 때리는 등 무시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버텨야 후배가 갈 취업처가 늘어난다고 했어요. 사회생활은 원래 힘든 거구나 생각하며 버텼지만 돌아오는 건 5개월차 당일 해고 통보였습니다. 학교에 전화했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김씨의 두 번째 직장도 만만치 않다. 일이 많은 편이라 입사 후 2개월 동안 매월 마감 기간 2주에 걸쳐 하루 1~4시간씩 야근을 했다고 한다. 공짜야근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무기력한 상태에서 바로 잠들곤 했습니다.”

그는 주당 50~55시간씩 일했지만 이번에도 나가면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회사를 관두지 못했다. 그는 영화 속 소희나 저처럼 지켜져야 할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야근해도 대가를 못 받는 고졸 노동자가 많다우리 같은 노동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기업 중심으로 노동자를 갉아먹는 주 69시간제(6일 기준)를 말하는 이정식 장관은 고졸 노동자 현실을 아느냐고 따졌다. 발언하는 김씨의 뒤로 과로사(過勞死)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영단어 Kwarosa를 적은 플래카드가 비바람에 펄럭였다.

▲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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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없는 과로사, 노동시간 상한 확대가 정부 할 일 맞느냐

또 다른 청년노동자는 창피하다고 했다. 전승혁 전교조 청년부위원장은 호주의 ABC 방송은 지난 14일 한국의 과로사 문제를 보도하면서 한국어 발음 그대로 Kwarosa로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며 왜 우리나라는 이런 노동후진국을 벗어날 수 없느냐고 이정식 장관에게 물었다.

ABC 방송은 윤석열 정부의 주 69시간제를 소개하면서 한국인은 지금도 다른 나라보다 오래 일한다고 꼬집었다. 실제 2021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이 연간 1716시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915시간으로 200시간가량 많다. ABC 방송은 과로사는 극심한 노동으로 인한 심부전이나 뇌졸중으로 돌연사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라고 소개했다. 호주에는 없는 말이라는 이야기다.

전승혁 청년부위원장은 “2020년과 2021년 이어진 택배노동자의 죽음의 행렬, 건설노동자 산업재해 사망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1위 등 전체 노동자 산재사망률도, 노동시간도 늘 OECD 최상위권이라며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더해 연장근로 12시간 상한을 둔 노동시간으로도 과로사가 발생하는데 상한만 확대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 맞느냐고 또 물었다.

과로는 단지 육체적 피로에 국한하지 않는다. 국무조정실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19~34세 청년가구원 15천가구 가운데 33.9%가 최근 1년간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첫 번째 이유는 향후 진로 불안(37.6%)때문이었지만 2~6위는 모두 업무 때문이다. 청년들은 일이 과중(21.1%)하고 일에 회의(14%)를 느끼고 일과 삶이 불균형(12.4%)하고 일에 비해 보상이 적고(7.3%) 보람도 없다(4.7%)고 응답했다.

창피한 것은 신조어가 된 kwarosa만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정부 관계자의 잇따른 발언을 개탄했다. “69시간제를 청년이 다 좋아하고 선진국에서 많이 시행한다는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의 발언이나 MZ세대가 부회장·회장 나오라 따질 정도로 권리의식이 뛰어나다는 이정식 장관의 말 등이다. 레마 청년녹색당 운영위원은 청년이 마음껏 일하고 싶어한다며 주 69시간을 말하는데, 나는 또 저 청년에 없다“도대체 당신들의 청년은 누구냐고 물었다.

장관은 없고 경찰은 있었던 청년 토론회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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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은 없었다. 1시간 동안 빗속에서 청년들이 외치는 사이 이정식 장관을 위해 마련한 의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경찰은 왔다. 경찰들은 이날 장관 없는 장관 토론회가 열린 본청 입구를 봉쇄하고 섰다. 이중문의 앞뒤를 경비원과 일부 경찰이 막아섰고, 건물 안쪽에는 철문이 내려져 있었다.

청년들은 발언을 모두 마친 뒤 주 69시간제를 전면 폐기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읽었다. 이들은 이정식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노동시간이 늘어난다고 주장하면서 2018년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가 급격히 들어오며 공짜·편법노동, 투잡·쓰리잡이 생겨 실 노동시간이 줄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개편한다고 밝혔다공짜·편법노동이 노동자가 원해서 생기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어 이런 와중에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제도를 추진하면서 청년노동자를 선별적이고 편향적으로 만나며 노조개혁 필요성을 외친다장관 없는 장관 토론회에 참여한 청년노동자들은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경시하는 정부의 주 69시간제 폐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장관이나 노동부 답변은 없었다.

▲ 이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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